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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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2.10.2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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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따듯하게 해주는 전래 동화

 

옛날 한양 남산골에 가난한 선비가 한 사람 살고 있었습니다.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글공부를 하는데, 너무 가난하여 하루에 겨우 죽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기가 다반사였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선비는 아궁이에 땔 나무가 없어 얼음장 같은 방안에서 덜덜 떨며 글공부를 하였습니다. 끼니를 걸러 뱃가죽이 등에 가서 들러붙은 데다, 입술까지 새파랗게 얼어붙어 글 읽는 소리가 시원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허기와 추위를 무릅쓰면서 글공부에 전력을 다하였습니다.

어느 해 정월 대보름날이었습니다. 선비는 그날도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덜덜 떨면서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어이, 춥다! 어서 빨리 이 겨울이 지나가야지. 추우니까 더 배가 고프구나.”

글을 읽던 선비의 입에선 저절로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창을 넘어 골목길까지 들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들창 밖에서 방안으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선비가 뒤를 돌아보니 방바닥에 보따리 하나가 떨어져 뒹굴고 있었습니다. 보따리를 풀기에 앞서 그는 우선 들창으로 머리를 내밀고 밖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달빛이 환한 골목길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일도 다 있군! 그런데 대체 이게 뭘까?”

호기심이 생긴 선비는 곧 보따리를 풀어보았습니다.

보따리 안에서는 한지에 곱게 싼 약식이 나왔습니다. 정월 대보름이라 명절 음식으로 만든 약식이었습니다.

“허허! 누가 이런 약식을 보냈을까?”

허기진 선비는 우선 배부터 채워야겠기에 허겁지겁 약식을 입에 집어넣기에 바빴습니다. 약식을 거의 다 먹고 났을 때였습니다.

“아이쿠! 이게 뭐야?”

딱딱한 것이 씹히는 바람에 선비는 하마터면 이빨이 부러질 뻔하였습니다. 얼른 꺼내 살펴보니 그것은 밤톨만 한 크기의 금덩어리였습니다.

 

“아니? 이렇게 큰 금덩어리를 누가 약식 속에 숨겼을까?”

그러나 선비는 금을 돌같이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금덩어리를 팔아 살림에 보태 쓰지 않고 벽장 속에 깊이 간직해 두었습니다.

“누군가 금덩어리를 잃어버렸다면 언젠가 그 주인이 나타나겠지.”

선비는 곧 금덩어리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리고 공부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배가 고플 때마다 그의 눈에는 금덩어리만 떠올랐습니다. 바로 벽장문만 열면 금덩어리가 있고, 그것을 팔아 쌀을 사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공부가 잘 될 리 없었습니다.

“이것 참! 금덩어리가 원흉이로다!”

선비는 금덩어리를 집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속의 동굴에다 숨겨놓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애써 금덩어리에 대한 생각을 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선비는 금덩어리가 눈앞에 아른거릴 때마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선비는 드디어 과거에 급제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는 임금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높은 벼슬자리에 올랐습니다.

원래 청렴결백하기로 소문난 선비는 벼슬자리에 오르고 나서도 역시 집안이 가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까지도 깊은 산속의 동굴에 숨겨둔 금덩어리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어느 해 정월 대보름날이었습니다. 임금님은 신하들을 불러놓고 대보름 잔치를 베푸는 자리에서 약식을 들다 말고 문득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벌써 꽤 여러 해가 흘렀구나. 오늘 같은 대보름날 짐이 변복을 하고 궁궐을 나가 남산골을 지날 때였는데 글 읽는 선비가 배가 고파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몰래 들창을 열고 약식 보따리를 넣어준 적이 있었지. 그 선비도 과거 시험을 준비 중이었던 모양인데,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구나.”

임금님의 이야기를 듣다 말고 선비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상감마마! 그날 밤 약식을 받은 사람이 바로 소신이옵니다. 하늘 같으신 은혜에 보답고자 열심히 노력한 끝에 이렇게 과거에 급제해 오늘에 이르렀나이다.”

선비가 선뜻 임금님 앞으로 나서며 말했습니다.

“오, 그대가 바로 그 선비였소?”

임금님은 반가운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네, 그러하옵니다.”

“그렇다면 약식 속에 들어 있던 금덩어리도 발견했겠구려!”

“네, 약식 속에 금덩어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소신은 지금도 그 금덩어리의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깊은 산속의 동굴에 숨겨두고 있습니다.”

선비는 그러면서 자신이 왜 그 금덩어리를 벽장 속이 아닌 깊은 산속의 동굴에 숨겨두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하였습니다.

선비의 말에 임금님은 크게 고개를 끄떡이고 나서 말했습니다.

“짐은 당시 그대에게 가난한 살림에 보태 쓰라고 준 것이었는데, 그 금덩어리를 아직도 팔아 쓰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니 정말 기특한 일이로고…….”

그러고 나서 바로 그다음 날이었습니다. 선비는 깊은 산속의 동굴에 감춰두었던 금덩어리를 꺼내 궁궐로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상감마마! 이제야 이 금덩어리의 주인을 찾게 되었으니 돌려드립니다. 이 금덩어리가 아니었으면 소신은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선비는 임금님에게 금덩어리를 바쳤습니다.

“금덩어리 덕분에 과거에 급제하였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그대는 금덩어리를 팔지 않고 그대로 짐에게 가지고 오지 않았소?”

임금님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습니다.

“상감마마! 그 금덩어리가 소신에게 아주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다는 말씀이옵니다.”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다?”

“네, ‘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바로 그런 가르침이었습니다. 저는 금덩어리가 생각날 때마다 그 가르침을 뼈에 새기며 학문에 정진하였던 것입니다.”

“오오! 그대야말로 진정 청렴결백한 선비로다.”

임금님은 크게 감탄해 마지않았습니다.

“황공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선비가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나는 이 금덩어리를 이미 오래전에 그대에게 주었도다. 그러니 이것은 그대의 것이로다.”

임금님은 선비가 바치는 금덩어리를 되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신하로 하여금 그 선비의 청렴결백한 정신을 본받게 하였습니다.

*사람에 따라 금덩어리는 재물이 될 수도 있고 보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재물은 생활의 편리를 위한 물질적 가치를 지니지만, 그것을 너무 탐하면 마약 같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물은 오래도록 간직해야 할 정신적 가치 기준으로 평가됩니다. 금덩어리를 어떤 가치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