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에 대한 이상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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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에 대한 이상한 변론
  • 박인철 기자
  • 승인 2022.10.1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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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 논란에 가려진 드라마의 계몽증

 

 재판장: 지금부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한 감상심리를 시작하겠습니다. 원고측 심문하시죠.

 

원고: 피고는 언제, 어디서 드라마를 시청하셨나요?

 

피고: 첫 회는 집에서 보고 그 다음부터 마지막 회까지는 주말에, 시골에 계신 어머니와 함께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요즘드라마가 (인물 관계와 시간 교차 장면 등)복잡하고 (살인과 폭력 등 사건은) 잔인하다고 싫어하시는데 이 드라마는 볼만하다고 판단했으니까요. 

 

원고: 이 드라마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피고: 아니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회의 경우, 저는 웃는데 어머니는 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대사가 잘 안들리나 보다' 해서 자막을 켰더니 그건 걸리적거리니 끄라고 하셨어요.  정명석 변호사에게 문병 겸 고민을 상담하러 간 장면이었죠. 알게 된 진실과 그것이 의뢰인에게 끼칠 피해 사이에서 딜레마를 느낀 우영우가 정작 말도 못 꺼내고 있었어요. 이를 눈치채고 정명석 변호사가 "두리뭉실하게 말해보라"고 하자 그때서야 우영우는 (마치 자세하지 않으면  괜찮다는 듯) 안심하고 입을 열죠. 

 

원고: 그게 뭐 어쨌다는 건지 간단히 말씀하세요. 이 자리는 그런 사소한 에피소드를 듣자는 게 아닙니다. 피고는 이 드라마를 깊고 진지하게 보지 않았는다는 거잖아요,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 보기에도 괜찮은, 예전의  일일 연속극 수준으로?

 

피고: 첨에는 그랬죠. 하지만 아니었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 어머니의 경우, 우영우의 특징에 대해 모르시니까 웃을 수 있는 장면을 못 웃으시더라고요. 즉 마지막 회까지 봤는데도 우영우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를 다 못 하신 거죠. '이걸 알아야 더 재밌는데 무심했구나',  '쉬운 드라마가 아니었구나' 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원고: 그래서 피고는 우영우가 어떤 사람이라고 이해시키셨나요?

 

피고: 그는 자폐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곧이곧대로'다. 기억력은 엄청 뛰어나다. 공부한 걸 다 기억하고 법전을 다 외우며 글자 그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에  따라, 마치 고백을 들은 신부님이 그 신자의 비밀을 지키야 하듯, 변호사는 자기 의뢰인의 비밀을 지켜야 하므로 고민을 말 못 하고 있다가 그걸 눈치챈 정변호사가 "두리뭉실하게 말해보라"고 하자 냉큼 털어놓았으니 우습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원고: 지금 피고 감상자는 '자폐인은 어리석고 우스꽝스럽다'고 자백한 것입니다. 

 

피고: 노친네가 이해하시도록 단순하게 말씀드린 겁니다.

 

 

원고: 피고는 그 노친께 '우영우놀이'를 가르쳤다고 하셨는데 그건 또 뭡니까?

 

피고: 유명한 "기러기, 별똥별, 인도인, 스위스, 토마토, 우영우"입니다. 자기 소개할 적에 써 먹으면 재밌을 거라고 외우라고 했죠. 마침 어머니 이름이 조*자이니까 비슷하잖아요. 근데 어머니는 "그럼, 조*조라고 해야겠네. 앞으로 해도 조*조, 거꾸로 해도 조*조" 하면서요.

 

원고: 재미없고 유치합니다. 그깟 사소한 대사를 외워서 사용하는 걸 보면 역시 피고는 자폐인과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드라마를 한낱 흥밋거리로 소비한 것입니다. 그것이 피고를 그 자리에 앉힌 이유입니다. 인정하십니까?

 

피고: "우 투더 영 투더 우" 하는 몸짓 인사, 그녀의 발걸음과 말투, 눈짓, 손가락 움직임 등에 주목했고 흥미로웠으며 흉내도 내 보았음을 인정합니다만, "한낱 흥밋거리로 소비"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자폐스펙트럼에 관해 관심을 가졌고 더 알게 되었습니다. 한낱 이런 이유로 논쟁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중요하지도 않고 비본질적입니다. 

 

원고: 재판장님, 지금 피고는 이 재판정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재판장: 인정할 바가 없지 않네요. 그게 아니라면 피고는 우리가 논쟁해야 할 다른, 더 중요한, 본질적인 지점이 있다는 것을 설득해야만 합니다. 그런 게 있기나 합니까?

 

 

2.

피고: 예, 있지요. 매 회마다 그런 점을 뽑을 수 있을 텐데 우선 마지막 회 그러니까 15~16화를 중심으로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에 앞서 원고 측과 배심원 여러분 그리고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1) 우영우의 이름은 왜 우영우일까요?

 2) 우영우는 하필 자폐아였을까요? 

 3) 우영우가 사랑하는 것은 굳이 고래였을까요? 

 4) 그는 왜 변호사일까요?

 5) 그의 마지막 대사는 "뿌듯함"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요?

 

원고: 아니, 뭐 하자는 겁니까? 여기가 얘들 문학토론장이나 무슨 퀴즈쇼 방송국인 줄 아십니까? 재판장님...

 

재판장: 조용히 질문 역할이나 해 주세요.

 

원고: (말투를 바꿔서) 옙! 첫 번째 의문 "우영우는 왜 이름이 우영우 일까요"에 대한 피고의 의견은 무엇입니까?

 

피고: 감사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작품의 제목 그리고 주인공의 이름은 작품에 가장 적절하게 붙여집니다. "우당탕탕 우영우'나 '어영부영 우영우'는 아니란 거죠. 우씨성의 '임금 우' 또는 '영웅 우'도 부적당합니다.  성씨는 아니지만 차라리 '어리석을 우' 가 어울립니다.  이 글자는 '우직하다'는 뜻도 포함하니까요.  이 우직함이 반복되는 것을 꾸며주는 말로는 오래도록, 길게 라는 뜻의 영이 제격입니다. 

 

원고: 너무 자의적이고 결과론적입니다. 

 

 

피고: 15화에서 찾아보면 권모술수 권민우 변에게 "좀 바보같이 살면 안돼냐?"고 호통치는 최수연 변이 나옵니다. 그래서 권 변은 그러겠노라 선언하죠. 이들이 말하는 '바보'는 사실 우영우를 일컫습니다. 눈치없이 바르고, 매너 없이 솔직한 그 이름. 약싹빠르게 아부하고 각종 연줄을 튼튼히 하며 내로남불하던 성공의 (지혜가 아닌)처세를 마침내 바꾸겠다고 합니다. 그런 것 모르는 우영우처럼, 순진하고 곧이곧대로, 교과서의 가르침 대로,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살겠노라 도원결의(?)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원고: 그럴듯 하지만....소위 '우영우놀이'는 그냥 놀이일 뿐이라고 발뺌하시겠죠?

 

피고: 모든 놀이가 그냥 놀이지만 또 그냥 놀이만은  아닙니다. 친구 동그라미와의 의례와 몸짓이 단적인 예죠. 놀이이자 절친관계를 드러내는 의례입니다. 앞으로 해도 거꾸로 해도 똑같은 말은 수미쌍관이자 뫼비우스의 띠 모양으로 뭔가 신묘합니다. 하지만 알고보면 우리 주변에 꽤 많습니다. '특별해 보이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라는 것 같지 않습니까?  자기 소개할 적에 본인 이름을 희화화하여 그렇잖아도 잊지못할 특별한 사람인데 그러는 것은 그냥  웃자고 하는 뜻이겠죠. 

 

재판장: 알겠습니다. 그만하면 이름과 관련해선 된 것 같네요. 

 

원고: 예. 그럼, 다음 궁금증 " 왜 하필 우영우는 자폐일까요?" 그러네요. 그렇지 않았다면 이 골치아픈 재판도 없었을 것 같네요. 신체 장애가 주는 알레고리로 파악하면, 그런 것은 좀 명확하달까 좀 쉽죠. 조심스런 말씀입니다만, 어떤 결핍과 욕망의 관계를 떠올릴 수 있잖아요. 보고 싶고, 듣고 싶고, 자유롭고 싶은 욕망을 가진 인물의 은유! 자, 그럼 자폐가 가진 메타포는 대체 뭐라고 보는 겁니까?

 

피고: 맥락을 잘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어떤 욕망과 연결 짓겠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누군가 밝힌 자폐인에 관한 정의를 따르면 "나로만 이루어진 세계에 사는데 더 익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원작자의 인터뷰를 참조하면)"인지적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거나 "말을 있은 그대로 이해하고 그 너머의 맥락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사람이예요.  단순화 하면 '남 눈치 안보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죠. 

 어떻습니까? 자유와 해방이 느껴지지 않나요? 한편으론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를 외치는 아이와 같죠. 그래서 시청자는 우영우를 귀엽다고 합니다. 다른 한편으론 배려와 친절 등에 얽매인 감정노동(자)의 속마음 같고요.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굴욕을 참지않는 맘이요. 우리는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지 못해서 자유롭게 말하고 싶어하죠. 시원하게, 통쾌하게, 방해 받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따라서, 어쩌면 우리 사회는 자폐를 원합니다. 그게 오히려 자유로우니까요. 

 

 원고: 재밌지만 위험하네요. 게다가 나이 등 위계와 연결되면 꼰대질 또는 갑질이 되는 지름길이잖아요. 

 

피고: 젊은 여자가 하면, 그것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의뢰인을 위해서 하면 당당한 자기주장과 변호가 되는 겁니다. 

 

원고: 그렇다면 다음 질문 " 왜 하필 변호사인가?"와 관련된다는 말입니까?

 

피고: 그렇습니다. 공감 없이 눈치 안 보는 정치가나 교사라면 부정적입니다. 그 직업은 국민과 보호자를 대리하는 직업이므로 공감력과 민의 요구에 민감해야 하니까요. 그런 거 없이, 법대로 원칙대로 '맞짱 뜨기'할 거라면 변호사가 제격이죠. (그렇지 않고 상대편에 공감하거나 자기 의뢰인이 비양심적일 때 우영우는 갈등하기도 합니다만, 그때조차 법리에 의존합니다!) 더불어 변호사의 화술과 내용은 정치가의 (입에 발린 듯한) 호소나 교사의 (죽은 지식 같은) 가르침과는 달라요. 변호사의 판례나 법 해석은 그 논리가 선명하고, 당장 '감옥이냐 벌금이냐' 같은 현실감을 주니까요. 

 

원고: 뜬구름 같은 설명이 아니라 실재감이 있기에 '몰입'하는 것과 같다, 그거죠? 그게 법정 드라마의 매력이죠. '죽느냐 사느냐'와 같은 절박함을 두고 벌이는 논쟁이니까요. 진검승부에 걸리적거리는 예의니 공감이니 따위 필요 없으므로 오히려 '자폐증은 변호사에 어울린다?' 또한 변호사의 논리와 논증은 매력적이기에 교육적이다?

 

재판관: 요약 잘 했어요.  그렇다면  고래는 왜 그렇게 나타나는 거죠?

 

 

원고: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네요.  "왜 고래인가?"^^

 

피고: 사실 드라마 전개상 꼭 고래일 필요는 없습니다. 애착하는 것이라면 소나 말, 새나 곤충류 다 어울리죠. 다만 고래인 이유는 신비로움과 낭만성이 강하다고 봅니다. 바다에 사는 유일한 젖먹이 동물로서 새끼를 키우는 점, 어마어마한 크기가 주는 숭고미, 숨쉬기 위한 것이지만 우아한 점프, 게다가 인간에게 친근하게 훈육되거나 소리-반응을 내는 등 교감이 이뤄지는 이미지, 멸종 위기종이라는 점 등등 경이롭고 귀엽고 신비로운 특성 때문이죠.

 

원고: 반박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만 남았네요. 

"뿌듯함"에 대해 왜 삐딱합니까? 장애에 대한 편견을 딛고 제 역할을 다함으로써 "여기(변호사 사무실) 서 일하는 게 좋다"라는 '성원권'을 주고받았으며 "고양이도 집사를 사랑합니다."면서 로맨스도 성숙해졌으므로 생기는 해피한 감정이잖습니까?

 

피고: '회전문'으로 비유되는 난관들을, 이웃과 함께, 스스로  헤쳐 나온 자존감, 독립심, 우애 등을 아우른 감정이므로 '뿌듯함'은 '행복감'일 겁니다. 영우는 아침부터 이 말을 찾고 있었죠. 마치 1화부터 이 말을 위해 달려 온 듯 합니다, 자기 완결을 위해. 영우는 끝끝내 빈 틈을 찾아 열린 문을 깔끔하게 여몄습니다. 즉, 주인공이 자폐증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드라마가 폐쇄됐다고요. 

 (<나의 해방일지>의)'추앙'이 시작의 말이라면 '뿌듯함'은 끝의 말입니다. 추앙은 그 말 이후를 기대하게 하지만 뿌듯함은 복기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한 말은 앞을 향해 개척하고  다른 말은 뒤를 향해 추억하게 합니다. 우영우는 다시보기로 이끕니다. 아마 복습할 게 많을 겁니다. 이 드라마는 시청자를 학생으로 만들었습니다. 여러가지 사회문제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다는 내용만이 아닙니다. 방법적으로도 - 자폐적 변호사의 풍부한 법리적 논리와 논증 등-그렇고, 찬반 토론의 재판 형식으로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주제와 교훈까지 찾게 만드니까요. 한마디로 유치함이 문제입니다.

 

원고: 저 궤변과 고집불통엔 엄벌로 다스려야 할 줄로 아옵니다.

 

재판관: (편안하게)판결 유예!

 

 

** 사진은 넷플릭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소개 자료에서 가져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