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길과 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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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길과 말의 길
  • 박인철 기자
  • 승인 2022.10.0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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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 2로 가는 두 개의 경로

 

 

1.

 <해방일지>의  손석구가 새로운 빌런으로 기대를 모았다. 액션도시엔 악당이 많았지만 윤계상의 쟝첸은 그전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말이 적었고 그만큼 행동이 빨랐다. 어느 새 끊어지고 뚫린 후에야 죽어간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속도. 두려움과 공포보다 죽음이 먼저 오는 그것은 황당함이다. <범죄도시>는 가타부타가 없(이 베)고  더하고 뺄 것이 없(이 찌르)는 액션영화다. <범죄도시 2>의손석구는 그 이상이었다(단지 액션 뒤에 꼬릿말이 붙은 게 달랐다). 형사 마동석도 마찬가지로 설득과 타협 없다. 그가 제시하는 것은 항복이나 굴복 둘 중 하나고, 질질 끌기 없기다. 갈등과 고민이란, 어떤 두 가치 사이에서 무엇을 고를지 헷갈리거나 욕심을 버리지 못할 때 생긴다.  애초에  끝난 선택에 더 이상 여지가 없는 두 사람의 가치(돈벌이 대 생명)는 이제 두 사람의 '힘"에 달렸다. 그런데 그 '힘의 경로'가 다르다. 손석구는 '칼의 길'이요, 마동석은 '말의 길'이었다. 

 

2. 

 그런데 손석구가 '말의 그물'에 걸린다. 마동석은 차라리 스파이더맨인 양, 말의 그물을 치고 아예 개그에 맛들였다. 말하는 도중에 전화를 끊었다고, "이 집안은 똑같네.", "매너 ㅈㄹ 없어."라며 한국에 들어온 손석구. 또 믿을 수 없으니 직거래를 하겠다는 회장 부인(박지영)의 말에 끌려갔고 운전수까지 허용하게 된다. 작전이 틀어졌을 때, 흥분한 쌍둥이를 설득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한다. 장이수(박지환)의 농간에 그를 살려둬서 버스를 탄 채 포위되는 지경에 이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버스의 인질이 많았는데도 확보(?)하지 못하고 마동석의 개그를 다 듣고(보고) 앉았다. 마침내 제 가치를 잃고, 현금 분배를 제안해 보지만 "누가 5야?" 라는 황당한 말의 수갑에 정신이 묶인다. "넌 꼭 내가 죽인다."는 그가 얼마나 말에 휘둘렸는지를 증명하는, 정말 무기력한 말이다.

 그에 비해 마동석의 개그는 빵빵 터진다. "왜 물어, 좀비야?" 하는 문화 개그부터 시작하여 "형은 다 알 수 있는데", "비밀의 방으로" 향하는 능청맞음, 그리고 (어떻게 왔냐는 질문에) "어, 버스 타고 왔어." 하거나 (까불이라는 악당에게) "까불고 있어."라고 하는 아재개그까지. 

 

3.

 그러므로 <범죄도시2>는 사실 '말의 도시'다. 속임말과 웃긴 말, 설득하는 말과 제압하는 말 등, 어떤 말이 적시적소에 활용되는지 쟁투를 벌이는 말의 액션 영화다. 말의 세계와는 담을 쌓고 칼의 세계를 휘젓던 손석구가, 말에 이끌려 말싸움의 세계인 말의 도시에 뛰어듦으로써,  칼을 꺼내지도 못한 채, 말을 휘두르다 말의 그물에 걸려 허우적대고, 말을 닥치게 된 개그영화다. 

 잔혹한 범죄도시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현란하고 다종다양한 말재간과 개그 권법에 넋을 빼고선 속은 줄도 모른다. 그게 말의 세계가 가진 가장 큰 사악함인데. 감히 예언하건데 <범죄도시3>은 예술(문학)이나 음악 혹은 종교가 주요 소재나 등장인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대중을 달콤하게 매혹시키는 가까운 곳에 액션과 말이 있었다면, 좀 멀지만 한 차원 높아지려는 의지가 향할 곳은 예술과 종교이므로. 아님, 제목이 '범죄도 시(詩)'라니까(범죄를 시처럼 쓰거나 다룬 영화-가령, 살인의 추억처럼-가 있다면 그야말로 범죄예술영화아닌가). 인간은 말놀이를 하려고 도시를 이룬 듯하다고 느낀다면. 어떤가 나의 말장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