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을 감동하게 한 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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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을 감동하게 한 효자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2.09.3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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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깊은 산골에 늙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집안이 가난했지만, 아버지 제사 모시는 일과 어머니가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하는 일만큼은 반드시 챙겨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효자’라는 칭송이 자자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흉년이 들어 농사를 많이 짓지 못하는 사람들은 꼼짝없이 굶어 죽을 판이었습니다. 총각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라 굶기를 밥 먹듯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머니 끼니만큼은 거르는 법이 없었습니다. 산에 가서 칡이나 마를 캐다 시장에 팔아 양식을 바꿔왔던 것입니다.

그해 겨울이 되자 땅이 얼어 칡이나 마를 캐기도 어려워지자 총각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더더구나 며칠 있으면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르는 기일인데, 제사상을 차릴 돈이 없어 걱정이었습니다.

총각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며, 그저 걱정되어 마당 주위만 뱅뱅 돌았습니다. 그때 마침 마을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부자 영감이 지나다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물었습니다.

“젊은이가 어찌 그리 한숨을 쉬는가?”

총각은 부자 영감에게 자신이 처한 사정을 들려주었습니다.

“허허, 소문으로 자네가 효자란 소릴 많이 들었는데, 과연 효자로구나. 나를 따라오게. 내가 마침 송아지 한 마리가 있어 팔려고 했는데, 요즘 도무지 장에 나갈 틈이 없다네. 그 송아지를 자네에게 줄 테니, 장에 내다 팔아 우선 급한 대로 제사음식을 마련하게나.”

부자 영감의 말을 듣고 총각은 허리를 세 번씩이나 굽혔습니다.

총각은 부자 영감을 따라가 송아지를 넘겨받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영감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여보게, 내가 그냥 주는 것은 아닐세. 내년 이맘때 그만한 송아지를 가져오거나, 그 가격에 합당한 만큼 우리 집 허드렛일이라도 도와주어야 하네.”

부자 영감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송아지가 됐던 허드렛일이든 반드시 갚도록 하겠습니다.”

총각은 송아지를 끌고 곧 장터 마당을 갔습니다.

장터 마당은 복잡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이 북적대는 곳에는 돈이 돌게 마련이었고, 그 속에는 돈에 눈독을 들이는 도둑들 또한 끼어 있는 법이었습니다.

총각이 송아지를 흥정할 때 나무 뒤에 숨어서 몰래 엿보는 도둑이 있었습니다. 어딘지 총각이 어수룩해 보여, 송아지를 끌고 장터 마당으로 들어설 때부터 미행하던 참이었습니다.

송아지를 판 총각은 곧바로 그 돈으로 제사상에 올릴 갖가지 과일이며, 생선이며, 나물과 같은 음식 거리를 장만했습니다. 결국, 뒤를 쫓던 도둑은 총각에게서 돈을 훔치려고 했는데 그럴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총각이 제사상에 올릴 음식 거리를 장만해서 집으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큰 고개 하나를 넘어야 하는데, 고갯마루에 올라설 즈음 뒤따라오던 도둑이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꼼짝 말고 게 섰거라. 네가 가진 짐과 돈을 모두 다 내놓아라.”

총각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바로 뒤에는 자신보다 키가 머리 하나는 크고, 힘깨나 쓰게 생긴 험상궂은 얼굴의 도둑이 서 있었습니다.

“안 됩니다. 이것은 아버님 제사상에 올릴 귀중한 것이니 내놓을 수 없습니다.”

총각은 거의 울상이 되었습니다.

“이놈아, 내가 장터 마당에서부터 네 뒤를 밟았느니라. 송아지 판 돈으로 모두 제사음식을 장만했을 리 없고, 네 주머니에는 남은 돈이 적지 않게 있을 것이다.”

도둑은 여차하면 총각의 멱살을 잡고 바짝 들어 올려 땅바닥에 거꾸로 내던질 기세였습니다.

“제발 제 사정 좀 봐주세요. 오늘 판 송아지가 제 것이었다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송아지는 우리 마을 부자 영감이 저의 딱한 사정을 알고 빌려준 것입니다. 그래서 내년 이맘때는 그만한 송아지로 갚거나, 그 값에 해당하는 허드렛일을 도와드려야 할 처지입니다.”

효자는 두 손을 모아 빌며 도둑에게 사정을 좀 봐달라 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창을 든 포졸이 고개를 넘다 두 사람을 발견하고 이상하게 여겨 물었습니다.

“너희들 아무래도 수상쩍구나. 지금 무엇을 가지고 서로 다투는 것이냐?”

포졸의 소리를 듣자 도둑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여차하면 달아날 기세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있어 여차하면 붙잡힐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총각이 포졸에게 말했습니다.

“나으리, 저희는 다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고개를 넘어올 때 들으니 꽤 시끄럽던데, 그게 싸우는 게 아니고 무엇이냐?”

포졸은 더욱 의심하며 두 사람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아하, 그거요? 사실은 이분이 제 아버님 살아계실 때 도움을 준 은인이라, 그 은혜를 돈으로 갚으려고 하는데 도무지 받으려고 하질 않는군요. 오늘 마침 송아지를 팔아 이렇게 아버님 제사에 쓸 음식 거리를 장만하고 오는 길에 이분을 만났지요. 이때 아니면 은혜를 갚을 길이 없다고 생각하여 송아지 팔아 장 보고 남은 돈을 드리려는 겁니다. 그런데 죽어도 받지 못하겠다고 하시니 참 저도 이럴 때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총각의 말을 다 듣고 나서, 포졸은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젊은이들이 의를 아는구먼. 참 아름다운 이야기요.”

포졸이 가고 나자, 도둑이 총각의 소매를 붙들며 말했습니다.

“아니, 나를 포졸에게 넘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위기를 모면케 해주다니. 총각, 너무 고맙소. 그리고 내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구먼.”

도둑은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질질 짰습니다.

“이러지 마세요. 다음부터 도둑질 안 하면 되지 않겠어요?”

“옳은 말이오. 내 지금 이 순간부터 도둑질 그만두고 착하게 살겠소. 자, 이것은 내가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 전부요. 오늘 송아지 판 값은 좋이 될 터이니, 이걸로 부자 영감에게 진 빚을 갚으시오,”

도둑은 돈이 든 주머니를 효자 앞에 내던지고 오던 길을 되돌아 마구 달려 고개 너머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얼마나 빠른지 총각이 미처 불러 세울 수도 없었습니다.

 

☞ 감동은 도둑의 마음까지도 되돌려놓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더구나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어 감동의 작은 물결은 나중에 큰 파도로 넘쳐흐르는 나비효과까지 일어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