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두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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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두 방식
  • 박인철 주민기자
  • 승인 2022.09.19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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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어질 결심]에 대한 도전적 해석

 

 얄팍한 라캉의 정신분석에 관한 이해를 단순하게 영화에 대입해 봅니다. 무의식의 세 경지 즉,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를 주인공들에게 적용해 보겠습니다. (간략하게 제 소양대로 비유하면, 우리 마음 속에 포근한 가정과 엄격한 학교 그리고 자유로운 놀이터가 있는 것입니다) 인물의 행위를 좌우하는 무의식이 어느 지경인지를 파악해 보는 겁니다. 이렇게 해 보면 해당 인물의 한계를 짚어볼 수 있습니다. 그는 얼마나 자유로운지, 어떻게 고민하는지, 그 너머는 또 어디인지를 더듬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상징계에 사로잡힌 해준(박해일)
 해준은 자상한 선배이자 피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형사이며 부드러운 남편입니다. 후배의 장점을 알아 이끌줄 알고 공권력을 남용하지 않으며 아내에게 사랑 받는사람입니다. 우정과 정의 그리고 애정에 충실한 사회구성원이요, 가장입니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모두 '아버지의 이름'으로 명해진 도덕과 법률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무의식의 세계인 잠에 빠져들지 못합니다. 무의식이 유혹하는 충동과 욕망(팔루스)은 '아버지의 이름' 으로 삭제되거나 억압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의식은 무의식적 생산물들을 회피합니다. 해준의 올바름은 의식적이고 그래서 강박입니다.

 그는 '꼿꼿'함을 추구하다보니 자신보다 더 꼿꼿한 서래에게 관심이 갑니다. 사소하고, 꼿꼿함과 상관 없어보이는 점도 자신과 닮았다고 - 말로 설명을 듣기보다 사진으로 직접 확인하겠다는 등- 반깁니다. 그녀의 결백을 진즉에 결심했고 마침내 (잠복과 감시를 통해)확신한 뒤에는 그녀를 추앙합니다. 사랑이 아닙니다. 나중에 밝혀지는 증거들과 재추리로 그가 추종했던 가치(정직과 성실)가 거짓과 조작으로 몰락하자 자신이 "붕괴됐다"라고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그는 고작 착한 어른인 체한 것이 들통날까 전전긍긍했을 뿐입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라고 묻는 것은 그 한 징표죠. 지레 제 발이 저린 유치한 항변의 모양새입니다.

2. 실재적 인물 서래(탕웨이)
 상징계의 법과 질서가 용납하는 대상(팔루스)은 가짜 욕망, 혹은 환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간파하여 허상이 아닌 욕망 즉, '실재적 욕망의 대상'(이라고 가늠한 것)을 추구하는 이가 서래입니다. 그는 '만만한가 아니면 대단한가'의 기준을 벗어납니다. 그런 행위는 상징계의 언어로는 포착되지 않으므로 비현실적(이상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보통 '모험'이라고 하지요. 또는 상징계를 벗어났으므로 기껏해야 '불법' 또는 '불륜'이라고 규정합니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라고 서래가 항변하는 이유입니다. 죄책감이 관련됐다는 뜻이죠. 실재적 욕망의 추구는 탈법적이니까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포기하라, 잠자코 감내하라' 라는 숙명에의 저항입니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빨리 차지하고 도달하라는 현대 사회의 시스템을 겨냥합니다. 공정한 경쟁과 결과에 승복하기라는 규칙에는 타고난 저마다의 가난과 환경과 지역이란 불편부당한 것이 아니기에, 그에 따른 분배 방식으로부터 일탈인 것입니다. 양과 높이와 속도를 추구하는 현재의 욕망 이데올로기와는 '차원'을 달리한 행위죠.

 이 저항과 일탈은 이를 포획하려는 상징계의 손길을 항상 삐져 나옵니다. 대타자 '아버지의 이름'으로 허락하고 인정폭을 넓힌다 해도 언제나 그 품 바깥에 있으므로 늘 불온하고 늘 부정됩니다. 마치 안개처럼, 기체도 아니고 액체도 아닌 것이,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눈을 가로막다가, 낮에는 잠시 사라지고 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서래는 계속 경계를 뛰어넘습니다. 안락사, 밀항, 결혼, 살인 및 증거 인멸 그리고 재혼 및 사랑 등 삶과 죽음을 규정하는 기존 도덕 관념과 법질서를 무시하고 이용합니다. 그녀의 결행은 과감하고 용감하며 떳떳합니다.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다만 '헤어질 결심'은 그녀의 입장에선 퇴행적이므로 안타깝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마지막 처신과 결행도 해준의 처지와 경지에서 판단하고 수색해 봤자 정처없을 따름입니다. (새로 올)미래의 선택을 (다 해진)낡은 방식으론 가늠할 수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