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山中示諸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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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서(山中示諸生)
  • 曠坡 先生
  • 승인 2022.08.3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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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속에서(山中示諸生)

 

계변좌유수(溪邊坐流水)/계곡에 앉아 흐르는 물 바라보노라니

수류심공한(水流心共閑)/물의 흐름이 내 마음처럼 한가롭구나

부지산월상(不知山月上)/산 위에 달이 떴는지 알지 못했는데

송영낙의반(松影落衣斑)/소나무 그림자 옷에 얼룽대고 있네

 

 

*자연과의 합일

중국 명나라 때의 유학자 왕수인(王守仁)의 시입니다. 그는 흔히 ‘왕양명(王陽明)’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주자학에 반대하여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한 ‘양명학’의 선구자입니다.

시의 제목 중 제생(諸生)은 ‘여러 제자’를 이르는 말이므로 ‘산속에서 제자들에게’라고 해야 마땅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산속에서'가 더 시제답다는 생각에 그렇게 옮겼습니다.

양명학을 일으킨 학자인 만큼 시에서 느껴지는 것도 다분히 철학적입니다. 1구와 2구에서 ‘물’과 ‘나’가 합일을 이루고, 3구와 4구에서 ‘달’과 ‘그림자’가 합일을 이루고 있습니다. 즉 양명학의 원리대로 풀면 ‘물’과 ‘달’은 지(知)이며, ‘나’와 ‘그림자’는 행(行)에 다름 아닙니다.

물과 내가 한마음인데, 달에 비친 소나무 그림자가 하나로 통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가만히 물의 흐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 몸이 물과 함께 흐르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달에 비친 소나무 그림자 또한 둘로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 만약 달이 없다면 소나무 그림자 역시 존재 가치를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절묘한 지행합일의 철학이 이 시에서도 상징화되고 있음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