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으는 아내, 퍼주는 남편
상태바
모으는 아내, 퍼주는 남편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2.08.26 08: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난하게 사는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부지런한 아내가 남의 집 일을 해주고 알뜰살뜰 돈을 모아놓으면, 남편은 그것을 불우한 이웃에게 나눠주어 집안이 늘 가난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아내는 그런 남편을 단 한 번도 탓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불우한 이웃을 돕고 돌아오는 날이면 아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 잘하셨어요.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답니다.”

“미안하오, 당신이 땀 흘려 번 돈인데. 그렇지만 우리보다 못사는 사람들이 많으니 어쩌겠소?”

이렇게 말하는 남편을 보며 아내는 싫은 내색 한 번 보이는 법이 없었습니다.

몇 년 동안 아내가 열심히 돈을 벌어 3천 냥쯤 모아졌을 때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이제 당신도 장사를 해보면 어떨까요?”

그러자 남편이 물었습니다.

“장사라는 게 어떻게 하는 것이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장사입니다.”

“그런 일이라면 나도 자신이 있소. 그렇지만 장사란 이문을 남겨야 하지 않겠소?”

남편이 난처한 얼굴로 아내를 쳐다보았습니다.

“너무 자기 잇속만 차리면 작은 장사밖에 못 합니다. 먼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열중하다 보면 나중에 큰 이득이 돌아오는 것을 진짜 장사라고 하지요.”

아내는 우선 장사 밑천으로 1천 냥을 남편 앞에 내놓습니다.

“그런데 장사를 하러 어디로 가야 하나?”

아주 난감한 얼굴로 남편이 물었습니다.

“올해는 대추가 흉년인데, 오직 충청도 지방만 대추 풍년이랍니다. 그 지방으로 가보시지요.”

아내의 말이 옳다고 여긴 남편은 곧 충청도 지방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막상 충청도 땅에 들어서 보니 대추는 풍년인데 벼농사가 흉작이라 사람들이 굶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남편은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자 대추 장사고 뭐고 생각이 싹 바뀌었습니다.

“이런 불쌍할 데가 있나?”

남편은 굶주려 부황이 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아내가 장사 밑천으로 준 돈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추는 하나도 못 사고 1천 냥의 장사 밑천이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남편을 보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참 잘하셨어요. 그럼 이번에는 황해도로 가보세요. 소문에 듣기로 면화가 풍년이라니, 면화를 사서 옷을 지으면 밑지는 장사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내는 이번에도 남들에게 퍼주기만 하는 남편에게 장사 밑천 1천 냥을 주었습니다.

황해도로 가는 길에 강을 만났는데, 때마침 어떤 여인이 대성통곡을 하며 강물로 뛰어들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여보시오. 앞으로 살날이 구만리 같은 분이 왜 죽으려고 하시오?”

남편이 그 여인을 붙잡고 물었습니다.

“날 좀 내버려 두세요. 남편이 장사하다 빚을 잔뜩 지고 감옥에 갇혔는데 살길이 막막하답니다. 감옥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남편 옥바라지도 못 하는 제 신세가 너무 한탄스러워, 사는 것이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인의 말에 남편이 물었습니다.

“대체 그 빚이 얼마요?”

“1천 냥입니다.”

남편은 그 여인에게 1천 냥을 주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죽으려는 목숨을 살렸으니 참 잘한 일입니다.”

아내는 다시 남편에게 마지막 남은 1천 냥을 장사 밑천으로 주었습니다.

“이제 겨울이니 함경도로 가보세요. 그곳에는 입을 옷이 변변찮아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양에 가서 헌 옷들을 많이 사서 함경도에 가서 팔면 장사가 될 겁니다.”

아내의 말대로 남편은 함경도로 떠났습니다.

막상 함경도에 가서 추위에 떠는 사람들을 보니 값이 싼 헌 옷조차 살 돈이 없어 보였습니다. 남편은 가지고 간 헌 옷들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누어주었습니다.

빈털터리가 된 남편은 갑자기 마음이 허전해졌습니다. 이제 다시는 아내에게 돌아가 변명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던 것입니다.

산길을 헤매다가 밤이 되었는데, 때마침 깊은 산속의 어느 오두막을 발견하였습니다. 남편이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니, 호호백발 노파가 그러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오래 산길을 헤매다 보니 추위에 떨고 배고픔에 지쳐 몸살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남편은 밤새 끙끙 알았습니다.

“이 산속에는 이것밖에 없다오, 무즙이니 이거라도 좀 들어보시오.”

노파가 바가지에 담아 내온 것을 보니, 그것은 무즙이 아니라 산삼을 갈아 만든 즙이었습니다. 남편은 그것을 먹고 몸살이 거뜬히 나았습니다.

“할머니, 이건 산삼입니다. 이것이 대체 어디에서 난 겁니까?”

“저 골짜기에 가면 이런 것이 밭을 이루고 있다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할머니를 재촉해 골짜기로 가보았습니다. 정말 산삼이 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런 횡재가 있나?”

남편은 정신없이 손으로 땅을 후벼 팠습니다. 신기한 것은 겨울인데도 산삼이 있는 땅은 얼지 않았습니다. 한참 정신없이 산삼을 캐다 뒤를 돌아보니 호호백발 노파는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산삼을 다 캐서 등에 짊어지고 오두막으로 돌아왔지만, 집조차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산삼 짐을 지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그동안 겪은 이야기를 아내에게 털어놓았습니다.

“대체 그 할머니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아마도 그 할머니는 산신이신 모양입니다. 당신이 착한 일을 하니 하늘이 도와주신 것이지요.”

이들 부부는 산삼 덕분에 백년해로하며 평생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 선행하는 사람을 보면 하늘도 감동하여 복을 내린다고 합니다. 말만 그러한 게 아니라 실제로 그러합니다. 선행을 많이 하는 사람치고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