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그리운 ‘평범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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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그리운 ‘평범한 엄마’
  • 예현숙 박사
  • 승인 2022.08.2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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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사 예현숙 박사

 

현대는 ‘평범한 엄마’를 보기가 힘들어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엄마가 점점 그리워지는 시대가 되었다. 평범한 엄마란 타고난 모성애를 발휘하고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 정신분석학자인 도널드 위니컷이 언급한 ‘충분히 좋은 엄마’이다. 유별나게 애정을 지닌 엄마가 아니라, 아기의 울음, 웃음, 옹알이 등 모든 움직임에 애정을 가지고 말 걸고, 반응하는 등 아기의 모든 공격성을 잘 받아주는 엄마이다.

 

 왕따는 어디서 오는 걸까

이 평범한 엄마가 때로는 아파서, 혹은 힘들어서 아기에게 실망을 주기도 하지만, 일관되게 사랑을 주는 엄마이다. 아기는 그런 엄마의 사랑을 알아차린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줄을 알고서 큰 탈 없이 잘 큰다. 엄마가 때로는 자신에게 나쁠 때도 있지만, 그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고 나쁨과 좋음을 통합해 내어 좋은 엄마 상을 내면에 가지고 성장한다.

이렇게 사랑을 먹고 자라서 좋은 엄마상을 가지고 자란 아기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한다. 그러므로 이런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면 다른 사람을 쉽게 왕따를 시키거나 왕따를 당하지 않는다. 사랑받은 경험을 통해 사랑을 배우며, 자기 정체성이 확실해지고,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청소년에게서 보이는 특징은 생기발랄함과 리더십이다.

 

 아이들 성장에 방해꾼이 된 엄마

지금 젊은 부모의 조부모 세대만 해도 자식들을 피임 없이 여러 명을 낳았고, 그 여러 명의 자식을 큰 애로사항 없이 키웠던 평범한 엄마들이 많았다. 엄마는 잘 먹이고, 잘 재우고 큰 탈 없이 지내도록 관심을 기울이기만 했다. 그 시기는 조기교육도 많이 없었고, 자동차가 길거리에 없었으므로 자식들을 동네에 나가 실컷 놀도록 허용했다. 그렇게 애들은 밖에서 마음껏 뛰어놀면서 자랐다. 잘 노는 것이 성격 발달에 아주 좋다는 것쯤은 다 안다. 그런데도 요즘 엄마들은 본의 아니게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대가 변한 측면이 큰 요인이다.

요즘 엄마들은 자기 계발에 힘쓰거나 직장에 나가는 등 경제활동이 점점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아기가 태어나도 충분히 돌봐주는 일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육아 휴직을 1년, 2년을 할 수 있는 직장이 그렇게 많지도 않거니와 그렇게 육아 휴직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이른 시기에 유아원에 보내어 엄마 품을 떠나게 한다.

 

 분리불안증세가 심해진 아이들

일 년이 갓 지난 아기들이 어린이집에 적응하기까지에는 두어 달 이상이 걸린다. 아기에게 정신적 외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아기들은 태생적으로 회복 탄력성이 있어서 잘 적응한다. 그렇지만 옛날처럼 3살 이전에는 엄마와 떨어짐이 없이 엄마의 울타리 안에서 잘 지내던 아기들보다 요즘 아기들은 분리불안증세가 심한 것이 사실이다. 왜 그렇게 학교에서 왕따를 시키는 애들과 왕따를 당하는 애들이 많은지, 그리고 심지어 30대에 이른 사회인들조차 그렇게 왕따를 당해서 혹은 왕따를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은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고유성과 자신감을 잃는 아이들

상담실에 오는 젊은 사람들에게서 그런 고민을 듣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왕따는 다른 사람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고, 시기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끼리 연대해서 개성이 있는 자신의 동료를 아무렇지 않게 왕따를 시킨다. 이런 사람들은 평범한 엄마 경험이 부재한 이유가 크다고 하겠다.

타고난 모성애로 아기를 키우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 건강한 아이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현대는 아이들을 너무 일찍 엄마와 분리하거나 조기교육을 시키므로 자녀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자유롭게 놀 수 없게 만든다. 그런 아이들은 자신의 고유성을 갖지 못하고, 자신감으로 든든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먹으며 원하는 삶을 살도록 해 주지 못한다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도널드 위니컷, 『놀이와 현실』 , 최민식, 『불안한 엄마의 심리수업』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