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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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사회학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2.07.0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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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한 권의 책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빈민 아파트단지. 거리엔 사람들이 별로 없고 황량한 바람만 스쳐 간다. 남루하고 불량한 형색의 젊은 남자들이 아파트 구석에 모여 한 손을 바지춤에 넣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 아파트 주민 아니고는 이 아파트에 외지인이 들어갈 분위기는 아니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주민들의 생활은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작은 구멍가게와 잡화점들이 있고 때론 마약과 매춘도 은밀히 일어나리라. 건달들이 정기적으로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뜯고 암묵적으로 주민 대부분이 이런 체제를 동의하며 살아간다. 그들의 구성은 불법 이민자와 범법자 그리고 대부분 법외지대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크고 작은 불법이 생활에 남아 있다 보니 정작 경찰을 필요로 하는 일이 생겨도 그들은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작은 사건을 해결하려다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아파트 주민의 삶 전체가 와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괴짜 사회학>은 이런 풍경을 그리고 있다. 젊은 학자인 저자가 논문연구에 필요한 자료와 현장경험을 수집하기 위해 건달 보스의 허락하에 주민의 생활을 취재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기록한 책이다. 아파트의 풍경은 우리가 영화 같은 데서 보았던 그런 음산한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주인공은 아파트 주민의 생활상을 조사하고 경험하면서 때론 동화되기도 하고 때론 이해를 못 하기도 한다. 이 책은 제목이 주는 뉘앙스하고는 좀 다르다. ‘괴짜’라는 말은 우리에게 어둡고 그늘진 이미지보다는 엉뚱하지만 다소 유쾌한 뉘앙스를 풍긴다고 볼 때 이 책은 제목이 내용을 잘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 원제는 <Gang leader for a day>. 직역하면 <갱 두목의 하루> 정도가 되는데 그 제목도 그리 명쾌하지 않다. 하기야 대부분 책이 책 내용의 함축보다는 상업적인 제목에 더 신경을 쓰는 탓에 내용과 제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그리 적은 일은 아니다.

책 내용은 이렇다. 시카고의 빈민가인 로버트테일러홈스 마을에 저자인 대학원생 수디르가 논문자료수집을 위해 들어간다. 마을에서 마을갱단 블랙킹스의 두목격인 제이티를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 아파트 주민들과 접촉을 할 수 있게 된다. 마을에는 제이티의 심복 친구인 티본과 프라이스, 자동차수리공인 시노트 아저씨, 주민대표 베일리부인, 매춘으로 살아가는 클래리스, 아버지로부터 성적 치욕을 당하고도 열심히 살고자 했던 여자 캐트리너 그리고 그녀의 죽음, 악질 경관 제리, 그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만들어내는 생활상들은 미국슬럼가의 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저자가 이곳에서 경험한 기간은 약 10여 년의 긴 세월이다.

로버트테일러홈스 마을은 결국 재개발로 헐리게 된다. 재개발의 구조는 자본주의하에서의 어느 곳에서나 같은 모습을 띤다. 공영, 빈민 아파트들이 헐린 자리에는 중산층과 상류층을 위한 아파트가 들어서고 거기에 관여하는 시장과 건축업자와 관료들은 모두 자본과 부동산의 이해로 꽁꽁 연결된 동지들이다. 거기에 살던 주민들은 모두 그곳을 떠나 뿔뿔이 흩어져 또 다른 빈민의 거주지로 이동하게 된다. 미국의 그나마 진보적인 정당이라는 민주당의 클린턴 대통령도 그곳을 방문하지만, 그가 빈민을 위해 해결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 책은 읽고 나면 빈곤은 개인의 책임일까? 사회적 문제일까? 라는 철 지난 주제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베일리 부인은 저자에게 일갈한다. "자네는 우리를 통해 공부한다고 하지. 한데 자네 또한 부정한 수단으로 일을 하는 거야. 우리 모두 부정수익자들이지"

취재를 마친 저자 수디르는 말한다

"나는 나의 선택에 따라 다른 삶을 살 수 있지만, 이곳 주민의 대부분은 앞으로도

여전히 가난한 미국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의 말이 이 책의 결론이다.

 

괴짜사회학/수디르 벤카테시/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