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덩어리와 사람의 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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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덩어리와 사람의 목숨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2.06.1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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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구두쇠로 소문난 억쇠라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억세게도 구두쇠 소리를 듣는 억쇠였지만, 집안이 원래 가난하여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억쇠는 부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해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억쇠는 삼 년 동안 새경을 받아서 쓰지 않고 꼬박꼬박 모아둔 돈을 어머니 앞에 내놓았습니다.

“어머니, 이 돈으로 제가 없는 동안 살림을 꾸려 가십시오. 앞으로 삼 년 동안만 대처에 나가 땅을 살 돈을 벌어오겠습니다.”

억쇠는 넙죽 어머니 앞에 절을 올렸습니다.

큰물에 나가야 큰 고기를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억쇠는 돈이 흥청거리는 한양의 큰 장터 마당을 찾아갔습니다.

장터 마당에는 포목점이 있었습니다. 억쇠는 그 포목점의 짐을 날라주는 점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억쇠가 돈을 버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였습니다. 일단 주인에게서 받은 월급은 단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하루 세끼 밥은 주인집에서 얻어먹게 되어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었습니다. 잠도 재워주니 숙박비도 들지 않았습니다.

남들은 월급을 받아 술도 마시고 담배도 사서 피웠지만, 억쇠는 도무지 그런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비싼 술을 돈 주고 사서 마시는 거요?”

억쇠는 주막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녀석아! 그럼 거지처럼 술을 얻어 마셔야 하겠냐?”

“그게 아니고요. 술 대신 돈 안 드는 물을 퍼마시면 되잖아요.”

억쇠의 이러한 말에 주막거리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억쇠는 정말 목이 마르거나 남들처럼 술이 마시고 싶을 때는 큰 바가지로 물을 가득 떠서 배가 불룩해질 때까지 들이마시곤 하였습니다. 어디를 가나 술 인심은 나빠도 물 인심만큼은 후했습니다. 주막에 가서도 물 한 사발 달라면 공짜로 주었던 것입니다.

“왜 비싼 담배를 사서 연기로 날려 보내는 겁니까?”

억쇠는 또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곤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연기로 날려 보낼 담배를 무슨 이유로 그렇게 피워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녀석, 순 나이를 헛먹었구먼. 담배 맛을 알아야 진짜 어른이 되는 거야.”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코와 입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잔뜩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술을 마시면 배라도 부르지만, 담배 피운다고 배고픈 걸 잊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억쇠는 이렇게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오히려 담배를 피우면 뱃속의 공기까지 연기와 함께 빠져나가기 때문에 고픈 배가 더 고플 것만 같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니 억쇠는 돈을 쓸데가 없었습니다. 그는 남들이 술 마시고 담배를 피울 시간에도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니 자연 포목점 주인의 신임을 받게 되었고, 월급도 그만큼 더 받았습니다.

“억쇠야! 넌 참 억척스럽게 일도 잘하는구나. 너는 이다음에 반드시 부자가 될 것이다.”

포목점 주인은 억쇠의 월급을 맡아 대신 관리해 주었습니다. 원금에 이자가 붙고, 또 이자에 이자가 붙으면서 돈은 자꾸만 불어나갔습니다.

삼 년이 되자 억쇠는 고향 집에 두고 온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모셔야겠습니다.”

억쇠가 이렇게 말하자, 포목점 주인은 그동안 맡았던 돈을 한 개의 금덩어리로 만들었습니다. 몸에 지니고 가기 편하게 해주려는 것입니다.

“이 금덩어리를 가지고 가면 네가 고향에서 농사지을 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포목점 주인은 따로 억쇠의 노자까지 마련해 주었습니다.

억쇠는 한양을 떠나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고향까지는 꽤 멀어서 며칠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억쇠는 그동안 주막집에서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마을을 지나다가 가난한 집의 허름한 방을 얻어 하룻밤 신세를 졌습니다. 물론 하룻밤의 숙식을 해결하고 나서 얼마의 돈을 주기는 했지만, 주막보다는 훨씬 싼 값이었습니다.

이제 하룻밤만 더 자면 고향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억쇠가 마지막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 찾아든 곳은 약초 캐는 노인이 사는 집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열 살 된 손자 하나를 데리고 외롭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억쇠가 그 노인의 집을 나설 때, 어서 빨리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만나야겠다는 급한 마음에 그만 금덩어리가 든 보퉁이를 놓고 나왔습니다.

한창 걷고 있는데 약초 캐는 노인이 달려왔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이 보퉁이를 놓고 가면 어떡하나? 보아하니 꽤 귀중한 물건 같은데.”

억쇠는 노인에게 몇 번이고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을을 벗어나 저수지 근처를 지날 때였습니다. 한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약초 캐는 노인이 달려왔습니다. 물에 빠진 소년은 바로 그 노인의 손자였던 것입니다.

물에 빠진 소년은 허우적거렸고, 저수지 주위로 몰려온 마을 사람들은 그저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죽음이 두려운 나머지 누구도 감히 물로 뛰어들어 소년을 구해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억쇠도 헤엄을 칠 줄 몰랐기 때문에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자신의 가슴만 두드렸습니다.

“누가 우리 손자 좀 구해주시오. 하나밖에 없는 손자요.”

약초 캐는 노인이 소리쳤습니다.

그때 억쇠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다가 문득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금덩어리가 든 보퉁이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쳤습니다.

“저 소년을 구해오는 사람에게 이 금덩어리를 주겠소.”

그러자 금덩어리에 욕심이 생긴 한 젊은이가 물속으로 뛰어들어 소년을 구해냈습니다.

약초 캐는 노인은 억쇠에게 몇 번이고 절을 하며 고마워했습니다.

“그런데, 그 귀중한 금덩어리를 주어버리면 어떡하오?”

“아닙니다. 금덩어리보다 더 소중한 것이 사람 목숨입니다. 제가 노인장 집에 그 금덩어리를 놓고 왔을 때부터 이미 그것은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그 금덩어리로 아이의 목숨을 구했으니, 저는 이제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는 셈이지요.”

억쇠는 이 말을 남기고 빈손으로 고향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억쇠의 어머니는 이름 모를 병으로 앓아누워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약초 캐는 노인이 달려왔습니다.

“이것은 산삼이오. 이것으로 젊은이의 어머니를 소생시킬 수 있을 것이오.”

약초 캐는 노인은 산삼으로 억쇠의 어머니를 살려내어 은혜에 보답하였습니다.

 

☞ 천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목숨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찮은 돈 때문에 쉽게 남의 목숨을 해치거나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덩어리를 주고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행위야말로 참다운 지혜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을 죽이는 돈과 사람을 살리는 돈이 있습니다. 어떤 돈이 진실한 가치를 지닌 것인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이므로, 더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