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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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위하여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2.06.1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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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한 권의 책

 

정의라는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사랑을 위하여나 낭만을 위하여가 아니라 정의를 위하여 라는 말은 얼마나 가슴 뛰고 흥분하게 하는 말인가. 불행하게도 세상은 잠시라도 정의가 흘렀던 시간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이 정의라는 가치에 이토록 열광하고 목말라 하는지도 모른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그런 세상은 우리 당대에는 불가능한 것인가?

 

정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정신, 곧 인문정신과 상통한다

이 책은 최근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정의관점에서 살펴본 사회학적 분석서이다. 저자의 정확한 시각과 예리한 분석력이 돋보이는 좋은 책이다. 굳이 흠을 잡는다면 예외상황에 대한 필요 이상의 나열이나 기타 다양한 견해에 대한 과다한 열거와 예시가 오히려 본질을 흐리게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대한 저자의 바람은 이렇다. "나는 이 책의 독자들이 이전에 묻지 않았던 물음들과 만나고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정황 속에서 이전에 묻지 않았던 새로운 물음들을 묻게 되기 바란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변화란 언제나 새로운 물음을 묻는 이들이 일으켰기 때문이다.“

세상의 정의 개념은 확장되고 있다. 젠더정의, 생태 정의, 인종 정의, 성정의, 장애 정의, 코스모폴리탄 정의, 세계정의~ 어느 것 하나에도 갖다 대면 바로 가치가 되는 게 정의의 개념이다.

정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정신, 곧 인문정신과 상통한다. 인문정신이란 보다 평등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연대와 책임적 삶에 자신을 던지는 정신이다. 인문학적 소양이란 확실성을 경계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사유하는 것이며 고정된 정답을 찾기보다 새로운 질문을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상투성에 저항하고 자명성에 물음표 붙이기 등으로 그 싹이 돋아나게 된다.

어버이연합에 대해서도 저자는 분석한다. 많은 부분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들이 저소득층이기에 그런 관제 데모에 동원될 수밖에 없다는 사회경제적인 분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그것보다는 그들의 강고하고 왜곡된 의식과 거기에 대한 자신의 집착과 아집이 이들을 나오게 한 원인일 것이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국가의 잘못된 교육, 언론의 편파 왜곡된 정보, 그리고 스스로 알고자 하는 노력의 부재 등이다. 그들은 생활이 윤택해도 그들의 생각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거리 동원에도 여전히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문제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나는 시간이 약이라든지 터널에 끝이 있듯이 슬픔에도 끝이 있다는 말들을 경계한다. 이제는 슬픔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어쩌면 격려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잔인한 폭력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이제 돌아갈 수 있는 일상이란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천만번 공감 가는 말이다.

 

비판적 사유란 자신과의 대화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사유를 강조한다. 사유의 이유는 존재 이유다. 한국처럼 좋은 학교, 좋은 직장만이 인생의 목적인 나라에서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사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이냐고 말한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사유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끔찍한 악에 가담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유 없음, 즉 비판적 사유능력의 부재다. 영혼 없는 공무원의 불법한 업무명령 수행이 또한 그렇다. 존재의 깊이에 도달하는 것은 진정한 비판적 사유로서만 가능하다. 여기에서 사유함이란 실제의 삶과 동떨어진 관념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과 연계된 사물이나 주변의 사건들을 비판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언제나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비판적 사유란 자신과의 대화로부터 시작되며 그럼으로써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거론된 여러 가지 이슈들이 많다. 테러방지법에 대한 국회 필리버스터 활동, 국정교과서 문제를 통하여 본 국정화라는 이름의 욕망, 태극기 게양과 애국심의 치졸한 해석, 유럽 난민에 대한 태도, '나는 대통령의 서재가 궁금하다'에서 유승민 배신의 정치-민주주의에서 배신의 정치를 누가 말하는가? 성 소수자에 대한 정상, 비정상이라는 구분은 한 사회의 주류집단이 결정해서 관습이나 미풍양속의 이름으로 유지되는 것. 불변하는 정상, 비정상은 자신과 다른 다양한 사람들의 평등성과 권리존중이야말로 '절대적 정상'이며 반대로 그들을 혐오하는 것이야말로 '절대적 비정상'이다. 신경숙의 표절, 페미니스트, 명절증후군, 알파고와 이세돌, 힐링의 바람, 인분 교수 사건, 종교와 신, 프란치스코 교황 이야기, 염수정 추기경의 무지의 폭력성, 고도를 기다리며, 독서 이야기, 용서 이야기, 등등 그가 말하는 분야는 넓고도 다양하다.

끝으로 저자는 분노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람시는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인간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기생충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관심이라는 병을 지닌 기생의 삶을 거부하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성찰적 분노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저자의 마지막 지적이 뜨겁게 다가오는 요즈음이다.

 

정의를 위하여/강남순/동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