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공 하나에 책과 음악과 문화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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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공 하나에 책과 음악과 문화를 그리다
  • 이영재 기자
  • 승인 2019.12.05 15: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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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탁구 박현정 관장을 만나다

“탁구장” 하면 5대, 혹은 6대의 탁구대가 놓인,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과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연상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 탁구장인데 음악 소리와 악기 연주가 들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며,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아주 특별한 탁구장이 있다. 종로구 계동2길을 걷다 지하로 내려가면 찾을 수 있는, “북촌탁구”. 아늑한 분위기, 잘 꾸며진 작은 집을 보는 것 같은 편안한 인테리어가 눈에 띄는, “북촌의 명물” “책과 음악이 있는 따뜻한 공간”인 북촌탁구의 박현정 관장을 11월23일 인터뷰하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북촌탁구 친절한 박 관장(박현정 관장)입니다.” 저를 이렇게 소개하곤 합니다. 즐거움에 의미를 더한, 재미있는 것들을 궁리하고 있는 문화계획자를 꿈꾸고 있습니다. 원래 별명은 북촌 문체부(문화체육부) 장관인데, 너무 거창하니 이 정도로 하죠(웃음).

북촌탁구를 운영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죠?

이제 1년 11개월, 2년 다 되어가요. 2018년 1월부터 운영했습니다.

북촌탁구의 하루는 어떤가요?

평일에는 탁구장이고, 한 달에 두세 번은 공연이나 강연 등 문화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보통 월, 목요일에는 어머니들 필라테스하고 나머지 요일은 탁구장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마침 친한 동생이 매트 필라테스 지도자 자격증이 있어서 필라테스 수업을 진행하는데 어머니들이 엄청 좋아하시죠.

실내 스포츠가 굉장히 다양한데, 그 중 '탁구장'을 열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북촌탁구 이전에도 탁구장을 운영하신 적이 있나요?

네, 원래 탁구장을 운영한 적 있습니다. 청량리에서 100평 정도 되는 탁구장에서 선수 출신 코치 3분을 두고 운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항암치료를 하시다 돌아가신 다음에 또 제가 아프고…. 상실감 같은 게 있잖아요? (그렇게) 1년 6개월 정도 쉬다가, 북촌에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리고 처음부터 탁구장만 해야지 하고 들어온 건 아니에요. 다양한 것들을 하고 싶어서 들어왔어요. 저도 밴드를 하고 있고, '북촌 밴드'라고 연합 밴드도 있어서요, 그래서 북촌에 자리를 잡게 된 거죠.

현재 밴드를 운영하고 계신가요?

밴드 멤버이기도 하죠. 50+재단에서 하는 오뿔(50+)밴드에서는 우쿨렐레 베이스를 치고 있고, 북촌 밴드는 북촌에 재주 있는 친구들이 참여한 연합 밴드에요. 공연 등 의뢰가 들어오면 거기에 맞는 출연진이 나가죠. 지난번 윤동주 문학제 때도 저희가 다녀왔고요.

 

북촌탁구의 전경을 보면 포근하고, 작은 다락방같이 아늑해 보이기도 한데요, 이렇게 공간을 꾸미게 된 이유가 있나요? 가장 중점을 둔 인테리어는 어떤 부분인가요?

사실 탁구장으로는 엄청 좁은 공간이에요. 그 전에 탁구장도 해 봐서 알지만, 잘 치는 분들은 뒤에 공간이 좁아서 칠 수도 없어요. 대신 좀 작고 아늑한 공간이니까, 어린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죠. 아이들이 오는 공간이니 제일 신경 쓴 게 마룻바닥이에요. 혹시라도 탁구장 운영이 잘 안 되면 댄스나 뮤지컬 교실을 해봐야 하나, 그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시작한 건 맞아요. 지금은 자리 잡아서 탁구 따로, 공연 따로, 강연 따로, 이렇게 진행하고 있지만, 되게 재미있는 공간이에요. 아이들도 와서 그냥 마루에 많이 뒹굴죠. 심지어 동네 개들도 산책 오는 탁구장이에요(웃음).

탁구 라켓을 보면 일반적으로 탁구장에서 제공하는 라켓보다 더 고급스럽고, 좋은 것들이 보이고, 또 신발 크기도 다양하게 갖춰지는 등 손님들을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게 보여요. 다양한 책들도 꽂혀 있고요. 물품들을 갖추실 때 중점을 둔 부분이 있나요?

일단 책은 도서출판 ‘마음의숲’에서 협찬을 받아서, 공연이나 강연 때도 항상 경품으로 드리거든요. 또 마음의숲 관계자분이 제가 많이 좋아하는 선배님 부부이기도 해요. 제가 북촌탁구를 하게 된 영감도 거기서 얻었거든요. ‘북바이북’에서 권대웅 시인의 북 콘서트를 보고, 이런 행사들을 해 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용기를 내서 북촌탁구를 꾸리게 된 거죠.

물품에 대해선, 직장인들은 정장 구두 신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분들이 와서 신발 없어서 탁구를 못 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갖췄고요, 책하고 우산은 저희가 무상으로 주민들에게 빌려드리고 있어요. 물론 도서관이 근처에 있지만 편하게 와서, “관장님 이거 빌려 갈게요” 하면 “네” 하고 또 와서 책은 다시 꽂아 두시고 하는데, 우산은 많이 없어졌어요(웃음). 근데 어쩔 수가 없는 게 제가 우산을 너무 저렴한 걸 준비했던 거 같아요. 20개를 처음에 준비했었는데, 아이들이 가져가고, 많이 고장 나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좀 좋은 거를 주문하려 하고 있어요. 겨울에 눈도 오고 해서.

“책과 음악이 있는 탁구장”이라는 문구가 인상 깊어요. 이렇게 테마를 잡은 이유가 있나요?

운동만 하는 게 아니라 문화적인 것들을 같이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거니까, 사실 탁구를 안 치는 사람은 탁구장에 오면 할 일이 없잖아요. 그래서 아이가 운동할 때 엄마가 책을 보면서 기다릴 수도 있는 그런 모습이 좋더라고요. 처음부터 그걸 예상하고 하진 않았지만 처음 시작을 하고 나서 보니 너무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좋더라고요.

 

어떤 음악을 주로 틀어주시나요?

김광석 님을 워낙 좋아해서, 탁구장에 김광석 님 사진이 걸려 있어요. 그리고 또 제가 북촌에 오게 된 것도, ‘둥근소리’라고 김광석 님 살아계실 때부터 활동하던 모임이 있는데,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여기 많이 살고 있어요. 그래서 처음 시작을 덜 외롭게 시작하였죠. 또 여기서 좋은 음악 공연을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토요일은 이웃북촌”이라는 행사도 주기적으로 열린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어떤 행사들이 열렸었나요? 제일 기억에 남는 행사가 있나요?

여태까지 북촌 싱어송라이터 공연도 했었고, 저희 음향을 도와주는 친구의 공연, 클래식 기타리스트 공연도 하고, 젊은 친구들 국악 판소리 공연 등 다양했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건 마을 사람들이 아이들 손 잡고 와서 편하게 다양한 문화 행사들을 함께 즐겼으면 하는 거죠.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작년 6월 초에 동네 식당을 하던 동생이 교통사고로 떠났는데, 건물주는 월세를 계속 내라고 해서 (월세를 모으기 위해) 동네에 사는 뮤지션들이 자선 콘서트를 열었던 거에요. 그때 유명한 기타리스트 박종호 씨도 참여했고요. 그 친구에게는 너무 고마워서 10시 넘으면 탁구장이 문을 닫아요 그래서 그 후에 여기 공간에서 편하게 연습하라고 해서 그 친구는 연습실로 쓰고 있고요.

그다음이 ‘아무연주대잔치’라고, 아무나 연주를 하는, 출연진이 돈을 내는 연주회가 있어요. 이번 12월 7일에 해요. 어린이들은 출연료를 안 내고, 어른들이 출연료를 내서 모인 돈으로 동네 치킨집이나 떡볶이집에서 음식을 시켜서, 동네잔치 하는 거죠. 공연 세팅을 할 때 전문가 동생이 와서 도와주는 등 음향에 제일 많이 신경을 쓰거든요. 그래서 다들 “여기 좋더라” 하고 입소문을 내주는 거죠. 올봄에 1회 ‘아무연주대잔치’를 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해서 이번에 또 하는데, 이번에는 출연진이 너무 많아서 어린이는 1부, 어른은 2부로 할 거예요. 그리고 또 추억이 되니까, 출연진 이름을 포스터에 넣어 주고요.

 

 

오늘은 어떤 행사인가요?

오늘은 “秋남꽐라보”라고 가을 남자들의 콜라보인데, 이 동네에서 10년 넘은 사장님하고 저희 수요일 기타 선생님, 천재 베이시스트라 부르는 직장인 밴드 하는 친구가 있어요. 이 친구 셋이서 하는 콜라보에요. 그래서 지금 리허설 하고 있고, 아마 엄청 재미있어하실 거에요. 연주도 되게 좋고요. 가요도 있고 팝도 있고 블루스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북촌탁구의 매력이 정말 많은데, 북촌탁구가 북촌의 대표 공간으로 자리 잡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어렵네요(웃음). 마을 사람들이 워낙, 저희 공간을 좋아해 주시니까. 사실 북촌의 대표 공간이라 하자면 좀 과하긴 한데, 사실 여기가 어린이들이 걸어서 그냥 갈 수 있는 운동 공간은 없거든요. 그런데 그나마 엄마들이 안심하고 보낼 수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좋아해 주시고요. 또 아이들도 워낙 저를 좋아해서(웃음), 여기 앉아있으면 아이들 다 많이 인사하고 가요. 우리 어린이들이 제 비타민이죠.

시간이 지나도 꼭 지키고 싶은 북촌탁구만의 색깔, 혹은 가치가 있을까요?

저희가 규모가 크지 않아도,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오고, 다양하고 재밌는 걸 하고 싶어요. 처음 시작은 혼자였어도, 지금 같이 해주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더 재미있는 것들을, 거기에 의미를 더한 것들을 같이 하고 싶어요.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는 생활문화센터를 하면 마을 사람들이 다양한 것들을 접하고 가까이, 편하게, 비용 부담을 덜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런 것들이 최종 목표에요.

이 공간에서는 지금처럼 아이들이 편하게 오고, 탁구를 하지 않아도 안심하고 올 수 있는 공간. 아이들에게는 그런 공간이었음 좋겠고요, 어른들은 보통 오전에 필라테스를 하는데 엄마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어 서로 알게 된 것이 참 좋더라고요. 그런 북촌 안의 작은 공동체 공간을 잃고 싶지 않네요.

 

“북촌탁구” 운영에서 2020년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2020년 아직 멀었다 생각했는데, 어떡하지(웃음). 올해는 북촌탁구라는 공간 안에서 했다면 내년에는 공간 밖으로 나와서 야외공연 등도 해 보고 싶어요. 소풍, 아이들 그림 대회, 글짓기도 해 보고 싶고. 저희 북촌탁구 이름으로 했을 때 마을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보고 싶어요. 사실 지금은 동네 어르신들에겐 죄송한 게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한 게 없더라고요. 2020년에는 어르신들도 같이할 수 있는 걸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다른 기관과 콜라보를 하면 좀 더 재밌는 일이 생길 거 같아요. 분기에 한 번 정도로 기획하고 있어요. 저희 것은 그대로 하고, 외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볼 생각이에요.

종로마을N 독자들에게 끝으로 해 주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독자들은 종로마을N 독자이기도 하면서 다음에 참여할 수 있는 예비 기자분들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마을에 생기는 일들에 관심을 두시면 몰랐던 것들을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이웃들과 같이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거 같고요. 저희 공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다른 분들도 이런 공간을 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문화 공간을 하고 싶은데 여긴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해서 오시는 분도 실제로 있고요. 예를 들어 창고가 있다면 창고로만 두는 게 아니라 그런 공간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들을 했으면 좋겠고요. 종로마을N도 그런 마을 미디어의 역할을 잘 해 주실 것이라 믿고요, 기사를 보시는 분들도 그냥 구독자로서가 아니라 같이 기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구름을 볼 때마다

달팽이가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느릿느릿 지게를 짊어진 할아버지처럼

밤하늘의 달을 볼 때마다

세간이 줄었다 늘었다 하는 것 같았습니다.

흥했다 망했다 살다 간 아버지처럼

그렇습죠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겠어요

하늘에 세 들어 사는

구름처럼 달처럼

모두 세월에 방을 얻어 전세 살다 가는 것이겠지요

-권대웅<인생>-

 

우리 모두 세월에 방을 얻어 전세 살다 가는 인생이다. 이런 인생에서 크게 욕심부리지 않고, 서로 나누며 사랑하는, 북촌탁구의 박 관장님과 북촌탁구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의 아름다운 관계가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다. 인근 커피숍에서 인터뷰하던 중 아이들 여러 명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박 관장님께 인사를 건네는 모습, 인터뷰가 끝나고 탁구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들려오던 공연장의 리허설 소리가 지금도 잔잔하게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이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