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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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사는 비결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2.06.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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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옛날에 귀신도 감탄한다는 용한 점쟁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예언은 맞지 않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뿐만 아니라 고관대작들 사이에서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질고 청렴결백하기로 소문난 한 정승이 점쟁이를 불러 점을 보았습니다.

“그대는 내가 몇 살에 죽을 것인지도 맞출 수 있는가?”

“네, 제 점괘는 틀린 적이 없습니다.”

점쟁이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럼 어디 점을 쳐 보게나.”

정승은 점쟁이에게 생월생시를 알려주었습니다.

“원래 천명은 본인에게 알려주지 않는 게 도리입니다만……”

점쟁이가 눈을 깜박거리며 정승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럴 테지. 그러나 염려 말게. 나는 언제 죽어도 좋은 사람이니까.”

사주를 풀어본 점쟁이는, 정승이 어느 해에 죽을 운명을 타고났다고 말하였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럽습니다. 그만하면 천수를 누리시는 편입니다.”

“허허, 내가 오래 사는 복을 타고난 모양이구나.”

정승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만족스럽게 웃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정승이 죽을 해라고 점쟁이가 말한 때가 되었습니다.

정승은 연초부터 죽을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재산을 처분하여 일가친척이며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두루 찾아다녀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인사까지 해두었습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

정승은 마음이 아주 홀가분하였습니다. 새삼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정승은 조용하게 죽음을 맞이할 날만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 죽음의 날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해가 바뀌었습니다.

“그 점쟁이가 인제 보니 순 엉터리로군!”

정승은 이렇게 말하며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에 혼자 껄껄 웃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쟁이가 제 발로 스스로 정승을 찾아왔습니다.

“자네 점괘가 용하다고 하더니, 어찌 내가 죽는 해를 맞추지 못하였는가?”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한 정승이 점쟁이에게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대감! 저도 그것을 도무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분명 대감의 점괘는 작년에 세상을 하직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도 대감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아, 이상하게 여기고 이렇게 찾아뵌 것입니다.”

점쟁이의 말에 정승은 다시 껄껄대고 웃었습니다.

“허허허! 그대도 내 죽을 날만 손꼽아 기다린 모양이로군. 천명은 천명인데, 그대가 내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게 괘씸해서 하느님이 명을 더 늘여준 모양일세.”

물론 정승은 농담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점쟁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무릎을 '탁' 쳤습니다.

“대감님! 제 점괘는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혹시 전에 누구에게 큰 은덕을 베푼 일은 없으신지요?”

“그건 왜 묻는가?”

“옛날 어진 사람들 가운데 은덕을 베풀어 천명보다 더 수명을 연장해 오래 산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하옵니다. 제 점괘가 틀림없다면 대감님께서도 반드시 그런 일이 있었으리라 생각하옵니다.”

점쟁이의 말에 정승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으흠! 그러고 보니 하나 생각나는 일이 있긴 있네.”

정승은 오래전에 자신이 겪었던 일 한 가지를 점쟁이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오래전, 정승이 홍문관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할 때였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밤을 새우는 적도 많았습니다.

어느 날 밤을 새워 글을 쓰고 나서 이른 새벽에 퇴청할 때였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가에 붉은 보자기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정승은 그 보자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보자기를 펴자 순금으로 만든 두 개의 술잔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보통 술잔이 아니었습니다. 궁궐에서 임금님 수라상에만 오르는 술잔이었던 것입니다.

정승은 누가 볼까 두려워 얼른 그 술잔을 보자기에 싸서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고는 궁궐 앞에다 방을 붙였습니다.

‘붉은 보자기를 잃은 사람은 나를 찾아오시오!’

이렇게 쓰고 그 밑에 정승의 이름을 적어 넣었습니다.

그다음 날 정승의 집으로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바로 임금님의 음식을 만드는 수라간의 별감이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별감은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습니다. 임금님의 술잔을 훔쳤으니, 그 사실이 알려지면 결코 살아남지 못할 운명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대는 왜 이 술잔을 훔쳤소?”

정승이 조용히 물었습니다.

“실은 이번에 제 조카 녀석이 결혼하는데, 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혼수를 마련하지 못했사옵니다.”

별감은 울면서 말하였습니다.

“아무리 그렇기로 도둑질을 하는 것은 잘못이오. 내 이번만큼은 눈 감아 줄 것이니 어서 이걸 팔아다 조카의 혼수를 마련하도록 하시오.”

정승은 별감에게 붉은 보자기에 싼 금 술잔을 돌려주었습니다.

“저,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별감은 두 번 세 번 절을 하며 울먹였습니다.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마시오. 이것은 훔친 물건이니 마땅히 주인에게 되돌려주어야 하나, 다행히 궁궐에는 이것 이외에도 많은 술잔이 있으므로 그대가 유용하게 쓰도록 하는 것이오. 만일 이후에 또다시 어려운 일이 있거든 도둑질을 하지 말고 나를 찾아오시오.”

정승은 이렇게 타일러 별감을 돌려보낸 후 그 사실을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대감의 수명이 연장된 것은 그런 은덕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은덕을 베푸는 사람에게 반드시 보상해줍니다. 대감님은 은덕의 보상으로 수명을 연장받은 것입니다.”

점쟁이는 감동한 얼굴로 말하였습니다.

정승은 사람에게만 은덕을 베푼 것이 아니었습니다. 새나 짐승을 집안에 가두어 두고 기르는 것을 보면 울 밖으로 풀어주며 말하였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런 은덕을 베풀어, 정승은 점쟁이가 예언한 것보다 15년이나 더 살다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 사람에게 은덕을 베풀면 그 즉시 자신에게 더 큰 복이 굴러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인명은 재천’이라, 즉 ‘목숨은 하늘이 준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이 인생을 어떤 자세로 사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생명이 단축될 수도 있고 연장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