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가르쳐준 진정한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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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가르쳐준 진정한 우정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2.05.20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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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일이면 매일 밖에 나가 친구들과 놀았고, 그때마다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간혹 집에 돌아오지 않고 밖에서 잠을 자고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얘야, 아무리 친구가 좋다고 해도 잠은 집에 와서 자도록 해라.”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후부터 아들은 아예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 먹고 마시며 놀았습니다. 사방에서 모여든 친구들은 실컷 먹고 떠들었으며, 그 웃는 소리로 집안이 떠들썩하였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놓고 물었습니다.

“저 방에 모인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네, 모두 저의 절친한 친구들입니다.”

아들이 대답하였습니다.

“대체로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란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이처럼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느냐? 이들이 모두 너의 진실한 마음을 아는 친구들이라면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아버님 말씀대로 제 진심을 알아주는 친구들입니다. 우리는 금과 재물을 얻으면 서로 나눌 것이며, 어려움을 당했을 때는 너나없이 돕기로 맹세까지 하였습니다.”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그것이 정말이냐?”

“네, 아버님! 저를 믿어주십시오.”

아들은 아주 자신 있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네 친구들을 상대로 시험을 해봐도 되겠느냐?”

“네, 좋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이렇게 약속을 하였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 아버지는 삶은 돼지를 가마니로 싼 뒤 아들에게 지게에 짊어지게 하였습니다.

“네가 가장 믿는 친구 집으로 가자.”

아버지의 말에 따라 아들은 한 친구의 집으로 갔습니다.

“이른 새벽에 웬일인가?”

아들의 친구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내가 실수로 사람들 죽였는데, 자네가 좀 도와주어야겠네. 이 시체를 어디다 숨겨줄 수 없겠는가?”

아들은 아버지가 미리 시킨 대로 말했습니다.

“잠시 기다려 보게나.”

당황한 친구는 얼른 집으로 들어간 뒤 한동안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습니다. 아들이 기다리다 못해 대문을 두드려 봐도 굳게 잠겨 있을 뿐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숨어서 지켜보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이 친구는 너를 도와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다른 친구의 집으로 가보자.”

아들은 할 수 없이 다른 친구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 역시 자신의 좋지 않은 사정만 잔뜩 늘어놓은 채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친구를 찾아갔을 때, 아들은 전보다 더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오히려 크게 화를 내는 것입니다.

“이 친구야. 사람을 죽이다니 그게 보통 큰일이냐? 네가 진 죄를 가지고 왜 나에게까지 그 혐의가 미치게 하려는 거야? 다른 말 할 것 없이 어서 빨리 이곳에서 사라져주게.”

아들은 그 친구의 집에서 쫓겨나듯이 되돌아 나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금란지교’를 내세우며 친구 자랑을 하던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네 친구들의 우정이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 나는 너처럼 친구가 많지는 않다. 그러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 진정한 친구가 하나 있단다. 이미 만난 지 십여 년이 넘었지만, 어디 한 번 내 친구의 집을 찾아가 보자꾸나.”

아버지는 앞장서서 자신의 친구 집으로 갔습니다.

이번엔 아들이 숨고, 그 대신에 지게를 바꾸어 짊어진 아버지가 친구의 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대문을 열고 나온 아버지의 친구는 반색하며 맞이하였습니다.

“여보게! 내가 자네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이렇게 왔네!”

아버지는 방금 전에 아들에게 시켰던 내용을 그대로 친구에게 전하였습니다.

“이런, 어쩌다 그런 큰 죄를 지었나?”

아버지의 친구는 근심 어린 얼굴로 물었습니다.

“사람이란 어쩌다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할 수도 있다네. 지금 당장은 혐의를 벗을 길이 없지만, 언젠가는 내 진실을 알게 될 걸세.”

“그러면 그렇지. 자네같이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고의로 사람을 죽였겠나? 어쨌거나 자네의 딱한 사정을 듣고 보니 지금 당장 관가에 잡혀가면 큰 곤란을 겪게 될 걸세. 우선 시체를 숨겨놓은 다음 대책을 논의해 보기로 하세나.”

아버지의 친구는 당장 지게를 내려놓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서둘러 땅을 팔 곡괭이부터 챙겼습니다.

“이 사람아! 그렇게 하면 나뿐만 아니라 자네까지 다치게 되네.”

아버지는 짐짓 친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벌써 동이 틀 무렵이 되었네. 더 지체하면 다른 사람 눈에 띄게 되니 어서 시체부터 서둘러 파묻어야만 하네.”

곡괭이를 울러 메는 친구를 보고, 아버지는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그 곡괭이는 내려놓게. 이것은 시체가 아니라 삶은 돼지일세. 이 고기를 안주 삼아 실컷 술이나 마셔 보세나.”

“그럼 그렇지. 자네가 사람을 해칠 위인인가?”

친구는 참으로 다행이라는 듯 아버지를 얼싸안았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친구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숨어 있던 아들을 불러 정식으로 인사시켰습니다.

“이제 보았느냐? 생사를 같이할 수 있을 만큼 절친한 것이 바로 친구 사이의 우정이니라. 알겠느냐?”

술상을 벌여놓고 친구와 주거니 받거니 몇 순배 잔을 돌리고 나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네, 아버님! 이제부터 정말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귀도록 하겠습니다.”

아들은 너무 부끄러워 그 자리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 사람이 일평생을 살아가면서 진심으로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 한 명을 사귄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친구의 목숨을 내 생명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진정한 우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지금 이 순간 그런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