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우즉사(果寓卽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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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우즉사(果寓卽事)
  • 曠坡 先生
  • 승인 2022.05.0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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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우즉사(果寓卽事)

 

정반도화흡(庭畔桃花泣)/뜨락에 핀 복사꽃이 눈물 흘리는데

호위세우중(胡爲細雨中)/어찌 가랑비가 내리기 때문이겠소

주인심병구(主人沈病久)/주인이 깊은 병 앓은 지 오래되니

불감소춘풍(不敢笑春風)/봄바람에도 감히 웃지 못하는게지

 

 

*봄의 교향악, 그 생멸의 변주곡

조선시대 중종~헌종 연간에 활동했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시입니다. 그가 말년에 이르러 과천에 머물 때 쓴 시인데, 그래서 '과우즉사(果寓卽事)'라는 시제를 붙인 것입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과천에 살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정희가 71세로 세상을 떠나던 바로 그해에 지은 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가랑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봄날에 복사꽃에 맺힌 물방울을 보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인생의 서글픔을 시 한 수로 읊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날이 젊은이에게는 청춘의 환희지만, 늙어가는 병든 사람에게는 죽음을 재촉하는 전령사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가랑비를 맞아 더욱 활짝 웃는 복사꽃조차 눈물로 여겨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어쩌면 생의 출발은 죽음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탄생하는 순간부터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봄은 소생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소멸의 의미까지 함유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봄은 그래서 기쁨과 슬픔이 한데 어우러진 교향악입니다. 그 교향악의 진수를 추사 김정희의 '과우즉사'라는 시에서 읽습니다. 어쩌면 봄은 생멸의 중의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