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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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돈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2.04.2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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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듯해지는 가족동화

 

한양에 글공부를 열심히 하는 가난한 선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벌써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하고 있는데, 이 선비는 매번 과거에 낙방하기만 하였습니다.

어느 날 배를 쫄쫄 굶으며 글을 읽고 있는데, 선비의 아내가 고기를 산다며 저잣거리로 나가려 하였습니다.

“무슨 돈이 있다고 고기를 산다는 거요?”

선비는 돈 걱정부터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이 당신 생일입니다. 아침에 미역국도 끓이지 못했으니, 저녁에는 고깃국이라도 끓여야겠습니다. 제게도 그만한 돈은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비의 아내는 저잣거리에 있는 푸줏간으로 달려가 고기를 한 근 사 왔습니다.

선비는 침을 삼키며 곧 저녁 밥상이 들어오기만을 고대하였습니다. 부엌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저녁 밥상을 들여오는데 보니, 고기는 없고 늘 먹던 꽁보리밥에 시래깃국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우선 진지부터 드십시오. 저는 급히 고기를 사러 푸줏간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아내의 이 같은 말에, 선비는 고기를 굽다가 다 태워버린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선비가 다시 물어볼 사이도 없이 아내는 급히 저잣거리로 달려나갔습니다.

궁금한 것을 참으며 선비는 꽁보리밥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아내가 저잣거리에서 돌아왔는데, 손에 들린 고기를 보니 서른 근은 되어 보였습니다. 무거운 고기를 들고 오느라 아내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무슨 고기를 그렇게 많이 사 오시오? 동네잔치를 하고도 남겠소.”

선비가 묻자 아내가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은 먹자고 사 온 고기가 아니라 땅에 파묻으려고 사 온 고기입니다.”

“아까운 고기를 땅에 파묻다니요?”

선비는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은 아까 고기 한 근을 구워 부뚜막에 올려놓았는데, 그것을 고양이가 먼저 날름 집어삼키고는 그 자리에서 몸을 비틀며 죽어버립디다. 고기에 독이 들어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저는 당신 몰래 감춰두었던 돈을 모두 꺼내 푸줏간으로 달려가 독이 든 고기를 모조리 사 온 것입니다. 만약 그사이 다른 사람들이 그 고기를 사다 먹었다가는 줄초상을 치를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말을 듣고 나서야 선비는 좋은 일을 한 아내를 칭찬해 마지않았습니다.

이처럼 착한 아내였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자 선비에게 하소연하였습니다.

“소문에 들으니 당신과 동문수학한 선비가 이번에 평양감사가 되었다 합니다. 우리가 가난하게 산다는 것을 알면 그분이 도와줄 것이라 믿습니다. 염치불구하고 한번 찾아가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선비도 아내의 하소연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좋소. 내가 한 번 평양감사를 찾아가 보리다.”

그러나 선비는 평양까지 갈 노잣돈 한 푼 없었습니다.

생각다 못한 선비는 이자를 받고 돈놀이를 하는 사람을 찾아가 딱한 사정을 말하였습니다. 평양감사의 친구라는 말을 듣고 그 사람은 흔쾌히 노잣돈을 빌려주었습니다.

선비는 곧 평양으로 떠났습니다. 평양감사는 반갑게 선비를 맞았습니다.

“내 이미 자네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네.”

평양감사는 진수성찬을 차려 선비를 대접하였습니다.

“이런 진수성찬보다 나는 당장 돈이 급하네.”

선비는 염치불구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염려 말게나. 내가 어음 칠천 냥짜리를 끊어줄 테니, 자네가 이곳으로 올 때 노잣돈을 빌린 사람에게 찾아가 현금으로 바꾸게나. 사실은 그 사람이 내게 먼저 연락을 취해 자네가 온다는 사실도 알았다네.”

평양감사의 말에 선비는 너무 고마워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선비는 임진강에 다다랐습니다. 강가에서는 한 남자가 물에 빠지려고 하고, 그의 아내는 한사코 말리는 광경이 선비의 눈에 띄었습니다.

“왜들 이러시오. 아니 왜 물에 빠져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

선비가 묻자 물에 빠지려던 남자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남자는 나라의 창고를 지키는 관리였는데, 동생이 소금 장사를 해 돈을 벌겠다고 하여 처음 3천 냥에 달하는 소금을 내어주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소금을 싣고 임진강을 건너다 배가 뒤집혀 낭패를 보자, 남자는 또다시 동생에게 4천 냥에 해당하는 소금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임진강에 소금을 빠뜨려 다 녹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동생은 죽을죄를 지었다며 어디 가서 죽어버리겠다고 사라졌으며, 남자는 돈 7천 냥이 없어 소금을 채워놓지 못하게 되자 소금이 녹아버린 임진강으로 달려와 죽어버리려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시오. 내게 마침 칠천 냥짜리 어음이 있으니 이것을 가지시오.”

선비는 그러면서 한양의 돈놀이 하는 사람 이름을 대주면서, 그를 찾아가면 곧 현금으로 바꾸어 줄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선비는 아내에게 임진강에서 만난 관리 이야기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리고 싶었으나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어 칠천 냥을 가지고 돌아왔소.”

그 말을 들은 아내는 안방 시렁에 줄을 매달고 목을 매 죽으려고 하였습니다.

“아니 부인 왜 그러시오?”

“당신은 덕이 없는 사람이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돈이 수중에 있는데도 그 돈을 그냥 가지고 오시다니요. 그 더러운 돈으로 목숨을 이어가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소.”

그때야 선비는 아내에게 사실을 말하였습니다.

아내는 목을 매려던 일을 그만두고 선비를 붙잡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당신이 사람 죽는 것을 보고 그냥 오셨을 리가 있겠소? 참 잘하셨소.”

그러고 나서 며칠 후의 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돈을 가지고 와서 선비에게 말했습니다.

“선비님이 임진강에서 죽을 사람을 구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평양감사께서 벼슬을 내리셨습니다. 이 돈은 가족이 함께 평양으로 이사할 때 경비로 쓰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선비는 비록 과거에 급제하지는 못했으나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고, 그 집은 후손까지 번창하여 영화를 누렸습니다.

 

☞사람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돈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므로, 먼저 사람부터 살리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지만, 한 사람의 생명은 오직 한 번밖에 태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