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睡起)
상태바
잠에서 깨어나(睡起)
  • 曠坡 先生
  • 승인 2022.04.19 1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잠에서 깨어나(睡起)

 

일사첨영낙계빈(日斜簷影落溪濱)/해는 기울어 처마그림자 물가에 떨어지고

렴권미풍자소진(簾捲微風自掃塵)/발 걷으니 미풍 스스로 티끌을 쓸어가네

창외낙화춘적적(窓外落花春寂寂)/창밖에 꽃잎 지면서 봄은 깊어만 가는데

몽회림조일성춘(夢回林鳥一聲春)/꿈에서 깨니 숲속의 새들 봄을 노래하네

 

 

*잘 짜여진 봄의 교향악

조선 중기의 승려인 석수초(釋守初)의 시입니다. 서산대사의 삼세법손(三世法孫)으로 알려져 있으며, 호는 ‘취미(翠微)’이고 특히 시를 잘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시집을 한 권 남겼습니다.

절간에서 오수에 졸다 깨어나 바라본 봄날의 정경을 그대로 묘사해내고 있습니다. 보고 들은 것을 억지로 꾸미지 않고 순수하게 글로 표현해 냈는데, 그 경지가 범상치 않은 깊이를 느끼게 해줍니다.

처마그림자가 물가에 떨어지는 것, 티끌이 바람에 쓸리는 것, 꽃잎이 떨어지는 것, 새들이 한 소리로 노래하는 것……  다 자연의 풍경이고 소리지만, 그냥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시인의 심상에 비치면서 하나의 의미망을 형성합니다. 저마다 흩어져 있는 자연의 의미를 시인은 심상의 그물로 건져 올려 잘 짜여진 봄의 교향악을 들려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