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쇠 남편을 살려낸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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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쇠 남편을 살려낸 아내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2.04.08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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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에 최 부자가 살았는데 구두쇠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까지도 의심하여 곳간의 열쇠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늘 자신의 허리에 차고 다니며 끼니때마다 아내가 밥을 할 수 있는 양 만큼만 쌀을 내놓는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최 부자를 볼 때마다 혀를 내두르곤 하였습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양반이야.”

어느 해인가 흉년이 들어 마을 사람들이 곧 굶어 죽게 생겼지만, 최 부자는 자신의 곳간을 풀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최 부자에게 욕을 해댔습니다.

“하느님은 저런 구두쇠를 잡아가지 않고 뭐 하는지 몰라?”

참다못한 아내가 최 부자에게 말했습니다.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은 쌀이 없어 곧 죽을 판이에요. 우리 곳간에서는 쌀이 썩어가고 있으니, 묵은쌀이라도 내어줍시다.”

“뭔 소리야? 게으른 사람들에게 줄 쌀이 어디 있어?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게을러서 탈이라니까.”

최 부자는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올해는 흉년이 들어서 그래요. 게으른 사람뿐만 아니라 부지런히 일한 사람도 먹을 쌀이 없어 굶어 죽을 판이에요.”

아내는 계속해서 최 부자를 졸랐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굶어 죽어도 싸다고. 다 자업자득이지. 유비무환이라고 흉년이 들 때를 대비해서 나처럼 곳간에 쌀을 쌓아두었으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 아닌가?”

“그 말씀은 맞지만, 그래도 어려울 때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복 받는 일에요. 영감처럼 자린고비로 행세하면 사람들이 욕을 한다고요.”

“일 없어!”

아내의 말에 최 부자는 아예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 돌아앉아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최 부자는 한양을 급히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곳간 열쇠를 맡기며 당부하였습니다.

“당신 이외에 누구도 곳간에 들여보내서는 안 되오. 그리고 끼니때마다 필요한 만큼씩만 쌀을 꺼내 밥을 지으시오.”

최 부자는 이렇게 당부를 하고 한양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최 부자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가 마을을 떠나자마자 곳간을 풀어 마을 사람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지게를 지고 와서 최 부자네 곳간에서 쌀을 한 가마씩 지고 갔습니다.

“고맙습니다. 부인께선 정말 복을 받으실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최 부자의 아내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하였습니다.

한편 그 무렵, 최 부자는 한강에 당도하였습니다.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가는데, 갑자기 물속에서 시커먼 이무기가 올라오더니 그를 향해 혀를 날름거렸습니다. 사공은 놀라 정신을 잃었습니다.

최 부자를 향해 다가온 이무기가 마치 사람처럼 말을 하였습니다.

“네가 자린고비로 소문난 최가 놈이냐? 나는 천 년 묵은 이무기인데, 일 년에 한 명씩 악한 사람을 잡아먹었다. 작년까지 999명을 잡아먹고, 올해 네놈만 잡아먹으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일 년을 기다린 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구나. 네 부인이 네 이름으로 선행을 베풀어 너를 잡아먹을 수 없게 되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으냐? 내 당장이라도 네놈을 머리부터 삼키고 싶다만, 네 부인의 선행을 봐서 다시 일 년을 기다리기로 했으니 어서 돌아가거라!”

말을 마친 이무기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정신을 차린 최 부자는 기절한 사공을 깨워 배를 돌리게 하였습니다. 그는 깨달은 바가 있어 한양에 가서 볼 일을 나중으로 미루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찍 집으로 돌아온 최 부자를 보고 아내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굶어 죽는 마을 사람들이 불쌍하여 곳간을 풀기는 했지만, 남편에게 변명할 어떤 말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영감의 당부를 무시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곳간을 풀어 쌀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아내의 말에 최 부자는 눈물까지 흘리며 고마워하였습니다.

“부인, 고맙소. 정말 잘한 일이오. 나는 죽을 목숨인데 부인 때문에 이렇게 살아날 수 있었소. 부인은 내 생명의 은인이오.”

그러면서 최 부자는 한강에서 만난 이무기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남편에게 크게 야단을 맞을 줄 알았던 아내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잠시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게 사실인가요?”

“그렇다오. 이번 일을 당하면서 나는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오. 사람은 남에게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 말이오.”

최 부자의 말에 아내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 잘된 일이로군요. 이제부터는 불우한 이웃을 도우면서 삽시다.”

그러면서 아내는 곳간 열쇠를 최 부자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아니오. 이제부터 곳간의 열쇠는 평생 당신에게 맡길 테니,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도와주시오.”

최 부자의 말에 아내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영감, 고마워요. 당신은 이번에 한강에서 다시 태어나셨군요.”

최 부자는 아내의 손에 곳간 열쇠를 꼭 쥐여주며 말했습니다.

“내가 살아난 것은 다 당신 덕분이오. 이제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 생각이오. 정말 고맙소.”

그 후부터 최 부자는 전 재산을 털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는 것이 억만금을 가진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안겨다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분수에 넘치는 재물을 곳간에 쌓아두는 것은 마음의 곳간을 허전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곳간의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곧 자기 마음의 곳간에 행복을 쌓아두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