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선비와 샛별 동자
상태바
가난한 선비와 샛별 동자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2.03.22 09: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가족 동화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글공부를 하는 가난한 선비가 있었습니다. 오래도록 글공부를 하였지만, 매번 과거 시험에 떨어져 아내와 자식들을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가난한 집에 자식은 또 많이 낳아서 일곱 남매나 되었으니, 늘 먹고살 식량이 문제였습니다. 아내가 남의 집 방아를 찧어주고 얻어오는 곡식으로 겨우 식구들이 목숨을 부지하며 살았는데, 어느 해인가는 흉년이 들어 농사를 많이 짓는 농가조차 먹고살기가 힘들었습니다.

일곱 남매가 며칠 동안 쫄쫄 굶어 사경을 헤매게 되자, 참다못한 선비의 아내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이러다 저 어린아이들 굶겨 죽이게 생겼소. 들에 나가보니 아직 추수하지 않은 벼들이 있더이다. 흉년이라 쭉정이 벼가 많다 해도 절구질을 하면 죽 끓일 양식은 나올 듯하니, 그거라도 베어다 아이들을 살려놓고 봅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남의 벼를 베어올 수는 없지 않소. 그건 도둑질이란 말이오.”

선비는 우두커니 앉아 천장만 쳐다보며 한숨을 지었습니다.

“그깟 벼 이삭 몇 개 자른다고 표가 나겠소? 오늘 밤 몰래 가서 벼 이삭 한 다발만 베어오시오. 시퍼렇게 눈뜨고 저 아이들 굶겨 죽이는 것보다 도둑질하는 게 더 낫지 않겠소? 아마 하느님도 우리 처지를 알면 너그러이 용서해주실 것이오.”

아내는 선비에게 낫을 들려주며 애원하였습니다.

선비는 결국 그날 밤, 낫을 들고 들로 나갔습니다. 들판을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그러나 선뜻 논으로 들어설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밤새도록 헤매고 돌아다니기만 하던 그는 용기를 내어 추수가 덜 끝난 논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막 낫으로 벼 이삭을 베려고 하는데, 등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 선비는,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하늘을 쳐다보니 벌써 새벽녘이 되었는지 하늘에 샛별이 떠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이크,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남이 땀 흘려 지은 곡식에 손을 대려 하다니. 저 샛별 보기가 부끄럽구나.’

선비는 벼 이삭 하나 베지 못하고 논에서 나와 빈손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밤새 이슬만 맞고 돌아다니다 빈손으로 돌아왔구려. 쯧쯧, 이제 저 어린아이들을 어쩌려고 그러시오.”

아내가 선비를 향해 측은한 눈길을 던지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무래도 도둑질은 못 할 짓이오. 하늘에 뜬 샛별이 부끄러워서 도무지 남이 농사지은 벼 이삭을 자를 수가 없었다오. 내가 산에 가서 칡뿌리라도 캐어올 테니 너무 염려 마시오.”

선비는 아내를 달래고 방에 들어가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선비는 산으로 칡뿌리를 캐러 갔습니다. 한참 산길을 오르는데 오솔길에 흰옷 입은 사람이 하나 쓰러져 있었습니다.

선비는 얼른 달려가 그 사람의 얼굴부터 살펴보았습니다. 열서너 살 먹은 동자인데, 아직 숨결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는 동자를 업고 샘가로 달려가 칡 잎사귀로 샘물을 떠서 먹였습니다. 그렇게 여러 차례 하자 동자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습니다.

“선비님, 고맙습니다. 간밤에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매다 허기가 져서 그만 정신을 잃었습니다.”

동자는 거듭 선비를 향해 절을 하며 고마움을 표시하였습니다.

선비는 급히 칡뿌리를 캐어 동자에게 건넸습니다.

“이것으로 요기가 될지 모르겠는데, 우선 씹어보게나.”

동자는 아주 맛있게 칡뿌리를 씹었습니다.

기운을 차린 동자는 선비를 도와 칡뿌리를 캤습니다.

칡뿌리를 캐면서 안 일이지만, 동자는 보기보다 기운이 아주 세고 일도 잘하였습니다.

선비는 동자와 함께 칡뿌리를 한 짐 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온 가족이 캐온 칡뿌리로 당장의 요기를 면하였고, 남은 칡뿌리는 말려서 녹말가루를 만들어 떡을 해 먹었습니다.

“당분간 이 집에 있게 해주십시오. 제 생명의 은인이신 선비님의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동자는 선비 집에 머물면서 매일 산에 가서 칡뿌리를 캐왔고, 틈이 날 때마다 산비탈에 화전을 일구어 밭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봄에는 수수, 조, 옥수수, 콩, 보리 등을 심어 농사를 지었습니다.

선비는 어린 동자가 어른보다 더 열심히 일하자,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먹고 낮으로는 그를 도와 농사일을 돕고 밤으로는 잠을 줄여가며 글공부에 정진하였습니다.

가을이 되자 풍년이 들어 농사지은 곡식이 집안에 가득가득 쌓였습니다. 동자 덕분에 선비는 비록 산비탈 밭이지만 농토도 생겼고, 한 해 먹을 식량도 충분히 마련하였습니다.

“이제 저도 떠날 때가 된 것 같군요.”

어느 날 새벽녘, 동자가 선비에게 절을 하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밭을 일구고 농사를 잘 지어주었는데 새경이라도 받아가야 하지 않겠나? 이렇게 갑자기 떠나다니 너무 서운하구나.”

선비가 동자의 손을 잡으며 말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제 생명의 은인이신데, 그 은혜를 갚게 해준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합니다. 저를 보고 싶으면 매일 새벽하늘에 뜨는 샛별을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동자가 떠나고 나서, 선비는 문득 새벽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샛별이 떠서 반짝이며 그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선비는 그때야 일 년 동안 통 샛별이 뜨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였습니다. 방금 떠나간 동자는 바로 샛별이 현신한 것입니다.

그 후 선비는 매일 샛별을 보며 마음을 다잡아 먹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 온정은 거짓이 없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온정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마음속에 순수함이 깃들게 해줍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염이 되는 온정이야말로 끈끈한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아교질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