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꾼 스님의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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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 스님의 보은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2.03.0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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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을 베푸는 이야기

 

깊은 산속의 다 쓰러져 가는 외딴 초가집에 나무꾼과 노모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깨에 바랑을 걸머진 스님 하나가 사립문 앞에 서서 목탁을 두드렸습니다.

“온종일 피죽 한 그릇 구경도 못 하는 이런 춘궁기에 웬 동냥이여?”

산에 가서 나무를 해서 집으로 돌아오던 나무꾼은 스님 뒤에 서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스님은 나무꾼을 향해 공손히 머리를 숙였습니다.

“스님은 양심도 없소? 이 지게에 있는 걸 보면 사정이 어떠한지 알만하리다. 송기라도 긁어먹으려고 생소나무를 베어오는 거요.”

“나무 관세음보살!”

스님은 다시 머리를 숙인 뒤 천천히 산길을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나무꾼의 눈길이 스님의 등에 짊어진 바랑에 가서 멎었습니다. 제법 묵직해 보이는 것이 쌀 한 말은 들어 있는 듯했습니다.

“흐음! 이런 춘궁기에 그래도 스님들은 형편이 괜찮군.”

나무꾼은 혼잣말을 지껄이며 등에 짊어진 생소나무를 마당에 부려놓았습니다.

그때 나무꾼의 머리에 퍼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옳지! 절에 가면 쌀이 있겠구나. 스님들이야 원래 보시를 하는 거니, 그 쌀 좀 훔쳐다 먹는다고 무슨 죄가 될까?’

나무꾼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는 노모 한 명만 모시고 살았는데, 바로 내일이 생신이었습니다. 송기떡을 해 드리려 했으나, 노모는 며칠 전부터 쌀밥 타령만 하였습니다.

밤이 되자 나무꾼은 빈 지게를 짊어지고 낮에 스님이 걸어간 산길을 더듬어 올라갔습니다. 목탁 소리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깊은 산속에 암자가 나타났습니다.

나무꾼은 스님이 염불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밤이 이슥해지자 드디어 염불 소리가 멎었고, 달빛만 고요하게 법당 뜰에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숲속에서 몸을 일으킨 나무꾼은 법당 뜰을 재빠르게 가로질러 암자 뒤로 돌아갔습니다. 그곳에 절의 곡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 곡간에는 쌀이 그득하였습니다. 며칠 후면 석가탄신일이 되는데, 아마 그때 쓸 양식 같았습니다.

나무꾼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한 가마니 가득 쌀을 담아 지게에 얹었습니다. 떡이며 과일 등도 한 자루 담아 얹고, 떨어지지 않게 새끼줄로 꽁꽁 묶었습니다.

나무꾼은 지게를 지고 일어서려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무거워 좀처럼 일어설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일어서려고 지게 작대기로 버티며 용을 쓰는데, 갑자기 지게의 무게가 가벼워졌습니다.

거뜬하게 일어선 나무꾼은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뒤에 스님이 서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스, 스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나무꾼은 얼른 지게를 내려놓으려고 하였습니다.

“쉬잇! 그대로 가지고 가시오.”

스님이 작은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네에?”

나무꾼은 영문을 몰라 눈을 휘둥그레 떴습니다.

“어차피 이 쌀은 중생들에게 보시하기 위해 탁발해온 것이오. 누가 먹든 먹어야 할 쌀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어서 가지고 가시오.”

나무꾼은 너무 고마워 스님에게 수십 번 허리를 구부렸습니다.

“사실은 내일 아침이 노모의 생신이라. 스님! 다음에 이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집에 돌아온 나무꾼은 다음 날 아침 노모의 생일상을 푸짐하게 차릴 수 있었습니다. 온갖 과일에 떡에 쌀밥이 올라온 생일상을 받자 노모는 기뻐서 어찔할 줄 몰랐습니다.

나무꾼도 노모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했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찔리는 구석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부처님에게 큰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던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나 노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무꾼은 옛날 쌀을 훔쳤던 암자로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스님! 저를 받아주십시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스님도 나무꾼을 알아보았습니다.

“허허! 노모님은 어쩌고 이렇게 오시었소?”

“노모는 세상을 하직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전날 스님이 베풀어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나무꾼은 스님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하였습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그대야말로 부처구려!”

스님은 나무꾼을 절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그 후 나무꾼은 절에서 쓸 나무도 해오고, 밥도 짓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는 등 온갖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였습니다. 그는 비록 작은 일이라 하더라도 아주 열성을 다하였습니다.

어느 날 스님은 나무꾼의 머리를 깎아주었습니다. 승복도 한 벌 주었습니다. 나무꾼을 정식 제자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나무꾼은 이제 스님이 되어 불경 공부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큰 스님이 열반하고 나서는 나무꾼 스님이 암자를 지켰습니다.

나무꾼 스님은 옷 한 벌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옷이 떨어지면 기워서 입기를 수십, 수백 차례 거듭하여 이젠 완전히 누더기가 되었습니다.

누더기 옷을 입은 나무꾼 스님은 어깨에 바랑을 걸머지고 탁발을 나섰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그를 보고 ‘거지 스님’이라고 놀려댔습니다.

“허허! 그래 나는 거지 스님이다. 이렇게 동냥을 하러 다니니까.”

나무꾼 스님은 아이들이 놀려댈 때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특히 나무꾼 스님은 ‘보릿고개’라고 하는 춘궁기 때 열심히 탁발하러 다녔습니다. 집집마다 목탁을 두드리며 다니다 보면 정말 피죽 한 그릇 끓여 먹을 양식이 없는 집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몰래 그런 집의 부뚜막에 탁발한 쌀을 놓고 가곤 하였습니다.

나무꾼 스님은 탁발한 쌀을 몰래 가난한 집 부뚜막에 놓고 나올 때마다 옛날 자신의 무거운 지게를 떠받쳐주던 스님 생각이 나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가난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되어주는 것만큼 어깨가 홀가분한 일도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몰래 보은을 하였는데도, 여러 해가 지나면서 나무꾼 스님이 가난한 집을 도와준다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지키는 암자에는 많은 신도가 몰려들었습니다.

나무꾼 스님은 제자를 두어 암자를 맡긴 뒤, 자신은 다른 빈 암자를 찾아가 기거하면서 보은 행각을 벌였습니다. 그러면 다 쓰러져 가는 암자에 신도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처럼 나무꾼 스님은 전국 각지의 빈 암자를 찾아다니며 보은 행각을 벌여 신도가 북적거리는 암자로 만들었습니다. 스님은 열반할 때까지 그러한 보은 행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힘에 겨워 발걸음조차 옮기기 어려운 누군가의 등을 밀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고, 그 감동의 물결은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면서 멀리멀리 퍼져나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