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지 않는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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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지 않는 씨앗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2.02.2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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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지혜를 주는 가족 동화

 

옛날 어질고 슬기로운 임금님이 있었는데, 거짓말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신하들은 거짓말을 너무 잘 하였습니다. 그저 임금님 앞에서만 잘 보이기 위해 충성하는 척, 열심히 일하는 척하였습니다. 
어느 날 임금님은 신하들을 불러놓고 말하였습니다. 
“이 나라가 평화롭고 백성이 행복하게 되려면 거짓말하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거짓말은 자신을 위장하는 것이고, 자신을 위장하는 것은 곧 자신의 마음을 도둑질하는 일입니다. 물건을 도둑질하는 사람도 죄를 짓는 일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도둑질하는 사람이야말로 큰 죄를 짓는 일입니다.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신하들이 모두 임금님에게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백번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큰 죄인이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 백성들은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많은가, 아니면 정직한 사람이 많은가? 그대들은 짐에게 사실대로 말하라.”
이번에도 신하들은 한결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대답하였습니다.
“모름지기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이 맑다고 하였습니다. 임금님께서 성군이시므로, 백성들도 착하게 살아갑니다. 우리나라 백성들은 거짓말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모두 임금님의 덕이 하늘의 해처럼 만천하에 미치기 때문입니다.”
임금님은 신하들의 이 같은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신하들부터 시험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어느 날 임금님은 여러 종류의 까만 씨앗을 내놓았습니다. 
“짐은 꽃을 좋아한다. 이것들을 가져다 그대들의 집 담장 아래 심어라. 이 씨앗들이 아름다운 꽃들을 피울 것이다. 가장 꽃밭을 잘 가꾼 사람에게 큰 벼슬을 내리겠다.”
신하들은 임금님이 내놓은 씨앗을 가져다 각자 자기 집에 심었습니다. 그러나 그 씨앗들을 모두 싹이 나지 않았습니다. 
신하들은 각자 비밀에 부친 채 몰래 다른 씨앗을 사다 심어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었습니다. 임금님이 내릴 큰 벼슬에 욕심이 났던 것입니다.
꽃이 한창 필 무렵 임금님은 신하들의 집을 차례대로 방문하였습니다. 참으로 집마다 꽃밭을 잘 가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임금님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습니다.
“꽃들을 참으로 잘 기르긴 하였소. 그러나 짐의 마음에 꼭 드는 꽃을 기른 사람이 한 명도 없었소.”
신하들에게 실망한 임금님은, 다시 백성들에게 꽃씨를 나누어주게 하였습니다. 역시 여러 종류의 까만 씨였는데, 꽃밭을 잘 가꾼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백성들도 신하들과 마찬가지로 꽃씨에서 싹이 트지 않자 시장에 나가서 새로운 꽃씨를 사다 집안에 심었습니다. 임금님이 내릴 큰 상에 눈이 어두웠던 것입니다. 

 

 

꽃이 한창 피는 철이 되자 백성들의 집 담장 밖으로 아름다운 꽃들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임금님은 백성들이 기른 꽃을 보기 위해 행차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담장 너머로 방끗 웃는 꽃들을 본 임금님은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상감마마! 백성들이 집마다 꽃밭을 아주 잘 일구어놓았군요. 정말 마마 덕분에 아름다운 고을이 되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신하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백성들에 대해 칭찬을 하며 임금님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고을을 거의 다 돌 무렵, 임금님의 행차는 어느 가난한 집 문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글 읽는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은 낮은 담장인데도 그 너머로 아름다운 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예 꽃밭이 가꾸어져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봐라! 이 집 주인을 불러오너라.”
임금님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가난한 선비 부부가 나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상감마마!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저희는 마마로부터 하사받은 꽃씨를 정성껏 심었습니다. 그런데 싹이 나지 않았습니다. 매일 열심히 물을 주었는데도 결국 싹이 트지 않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저희가 너무 물을 많이 주어 씨앗을 썩힌 죄이니, 무거운 벌을 내려주십시오.”
임금님은 빙그레 웃으며 선비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내 방금 그대의 글 읽는 소리를 들었다. 보아하니 과거 공부를 하는 모양이로구먼.”
“네, 마마! 몇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공부가 부족하여 번번이 낙방하였습니다.”
가난한 선비는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는 채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허허허! 그대는 고개를 들라. 공부가 부족하다니. 지금까지 짐이 본 신하와 백성 중에서 그대만큼 큰 공부를 한 사람을 보지 못했노라. 그대는 ‘정직’이라는 마음의 꽃을 활짝 피웠으니 큰 상을 받을 만하다. 사실 짐이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하사한 씨앗은 불에 볶은 것이었느니라. 집마다 화려한 꽃을 피운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을 한 셈이지. 그러나 이 선비만큼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매우 훌륭하다.”
임금님은 가난한 선비에게 상으로 특별히 큰 벼슬을 내렸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도 꽃밭이 있습니다. 마음속의 꽃밭을 가꾸는 일이야말로 참다운 인생을 사는 길입니다. 마음속의 꽃밭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은 바로 ‘정직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