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야(雪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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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雪夜)
  • 曠坡 先生
  • 승인 2021.12.1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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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가 좋다

                      설야(雪夜)

 

이아금침랭(已訝衾枕冷)/아, 왠지 잠자리의 한기가 느껴져

부견창호명(復見窓戶明)/다시 보니 창문의 빛이 환하구나

야심지설중(夜深知雪重)/깊은 밤 무거운 눈 내린 걸 아네

시문절죽성(時聞折竹聲)/때로 대나무 꺾이는 소리 들린다

 

 

*시린 겨울밤의 적요

중국 당나라 때의 거장 백거이의 시입니다. ‘백락천’이라고도 하는데, 흔히 ‘풍유시인(風諭詩人)’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5언4구’라는 가장 짧은 형식의 한시지만, 시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은 정밀하면서도 세련미가 돋보입니다.

한국의 시인 김광균은 ‘설야(雪夜)’라는 같은 제목의 자유시에서 밤에 눈이 오는 모습을 ‘먼 곳에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백거이는 같은 제목의 한시에서 ‘환한 창문의 빛’으로 눈이 많이 왔다는 것을 알고, ‘대나무 꺾이는 소리’로 적설의 풍경을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1구에 나오는 잠자리의 싸늘한 ‘한기’는 2구에서 환한 ‘창문의 빛’과 만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1구는 의문이고 2구는 그에 대한 답입니다. 그리고 3구의 ‘무거운 눈’은 4구의 ‘대나무 꺾이는 소리’와 조우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3구의 근심을 4구가 결과로 답하는 것입니다. 또한, 1·2구는 시각에, 3·4구는 청각에 호소하면서 완성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언절구’의 짤막한 이 시에서는 또한 함축미가 느껴집니다. 시인은 아주 언어를 아끼면서 할 말을 다 하고 있습니다. 눈이 오는 소리(사실은 ‘한기’)에 잠을 깬 주인공의 심사를 아주 잘 드러내 주면서, 깊은 겨울밤의 적요를 ‘대나무 꺾이는 소리’ 하나로 훌륭하게 묘사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대나무 꺾이는 소리’의 청각 이미지가 가져다주는 절묘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적요는 대나무 가지를 꺾이게 하는 무거운 눈의 부피처럼, 잠자리에 누운 주인공을 잔뜩 찍어 누르고 있습니다. 시린 몸과 외로운 마음이 방안의 적요를 더욱 무겁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