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덕에 출세한 백면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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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덕에 출세한 백면서생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1.11.19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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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함이 묻어나는 온 가족이 읽는 동화

 

어느 고을에 백면서생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선비는 어려서부터 열심히 글을 읽었으나 번번이 과거에 낙방하자, 벼슬을 포기한 채 서당에서 접장 노릇을 하며 그저 세월이나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이젠 나이가 들어 벼슬길에 오르기도 글렀고, 무슨 낙으로 세상을 살아간단 말인가?”

어느 날 백면서생이 서당 앞의 오동나무를 바라보며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쉬고 있을 때, 그에게 글을 배우던 소년이 곁에서 그 소리를 듣고 말했습니다.

“스승님, 너무 근심하지 마세요.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는 법이니 좀 더 기다려 보시지요.”

짐짓 이렇게 어른스런 말을 하는 소년은 고을에서도 천재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 정도로 매우 머리가 명석하였습니다. 그는 명석한 두뇌로 감쪽같이 도둑을 잡았고, 고을의 송사가 걸린 문제도 슬기롭게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래 너는 어찌하여 이놈이 범인인 줄 줄 알았느냐?”

소년 덕분에 송사를 해결한 고을 원님이 물었습니다.

“스승님께서 미리 아시고 제게 귀띔해주신 것뿐입니다.”

소년은 언제나 스승인 백면서생이 다 가르쳐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소년이 천재 기질을 발휘할 때마다 백면서생의 명성도 덩달아 올라갔습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 이제는 그 고을뿐만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 소년과 백면서생의 이야기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소년도 천재지만, 그 아이를 가르치는 스승이야말로 무슨 일이든 척척 알아맞히는 족집게 도사라네.”

사람들은 소년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백면서생을 더 추켜올려 주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백면서생의 소문이 임금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옥새(사진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어느 날 궁궐에서 임금님만 가지고 있는 옥새가 사라졌습니다. 나라에 옥새가 없어졌다는 것은, 그 사건 자체만으로도 큰 변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임금은 몰래 신하를 백면서생에게 보냈습니다. 신하는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대는 반드시 옥새를 찾아내야 하니, 어서 궁궐로 갈 채비를 갖추시오.”

백면서생은 가슴이 덜컥, 하였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백면서생은 제자에게 달려가 신하에게서 들은 사연을 그대로 털어놓았습니다.

“스승님, 걱정 마십시오. 분명히 그 옥새는 궁궐 어디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찾는 것도 크게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천재 소년은 태연자약한 태도로 말했습니다.

“아니, 네가 어찌 그것을 장담할 수 있단 말이더냐?”

“임금님 앞에 나가시면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제자의 말에 백면서생은 그대로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하를 따라 한양으로 올라간 백면서생은 임금님 앞에 나가 천재 소년이 가르쳐준 대로 말했습니다.

“며칠간 말미를 주시면 반드시 옥새를 찾아드리겠습니다.”

“오, 그래? 과인은 그대만 믿는다. 옥새만 찾으면 그대에게 큰 벼슬을 내리겠노라.”

임금은 백면서생의 말을 들어주었습니다.

백면서생은 며칠 동안 궁궐에서 빈둥거리며 좋은 음식과 귀한 술로 호강을 하였습니다.

드디어 약속한 날짜가 임박했을 때, 백면서생은 허겁지겁 임금님께 달려가 말했습니다.

“전하! 방금 제 집에 불이 났습니다. 먼저 그 불부터 끄고 와서 옥새를 찾겠나이다.”

“뭐라고? 네가 천리안이 아니거늘, 어찌 수백 리가 넘는 네 집에 불이 난 것을 안단 말이더냐?”

임금님은 백면서생이 도망가려고 하는 수작으로만 알고 호통을 쳤습니다.

“정 못 믿으시겠다면 저를 이곳으로 데려온 신하와 함께 가겠습니다.”

그때서야 임금님은 백면서생에게 신하를 딸려 고향에 다녀오도록 분부하였습니다.

신하가 함께 백면서생의 고향으로 달려가 보니 과연 집에 불이 났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집 전체가 불탄 것은 아니지만, 뒤꼍에 있는 헛간에 불이 나서 하마터면 집 전체를 다 태울 뻔했다는 것입니다.

이때 백면서생은 잠시 제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두 사람이 몰래 약속한 대로 소년이 일부러 헛간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참 용하시오. 불행 중 다행이니, 어서 궁궐로 돌아가서 옥새를 찾읍시다.”

신하가 말했습니다.

궁궐로 돌아온 신하는 임금님에게 보고 들은 그대로 보고하였습니다. 그러자 백면서생은 앉아서 천 리 밖을 내다보는 눈을 가졌다는 소문이 궁궐 안에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그 날 밤, 백면서생의 숙소로 몰래 찾아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임금님과 아주 가까운 왕손 중의 하나였습니다.

“사실은 간신배들 꼬임에 빠져 내가 옥새를 훔쳐다 연못 속에 던져버렸소. 죽을죄를 지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왕손의 말에 백면서생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두 사람만 아는 비밀이니 죽을 때까지 지켜져야 합니다.”

백면서생의 말에 왕손은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물러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백면서생은 임금님 앞에 나가 말하였습니다.

“옥새는 궁궐의 연못 속에 있습니다.”

곧 병사들을 불러 연못의 물을 퍼내니 과연 그곳에서 잃어버렸던 옥새가 나왔습니다.

“참으로 용하도다. 그대는 어찌 옥새가 있는 곳을 알았는가? 옥새를 훔쳐다 저곳에 버린 자는 누구인가?”

임금님은 너무 놀라워 입을 다물지 못하였습니다.

“간밤에 꿈속에 신선이 나타나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옥새를 훔친 자를 알게 되면 나라에 큰 변란이 일어나니 더 이상 찾으려고 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백면서생의 말에 임금님도 더는 범인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백면서생은 옥새를 찾아낸 덕분에, 그 상으로 큰 벼슬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는 말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제자를 둔다는 것은 큰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