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카시아 관찰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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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카시아 관찰일지
  • 채동균 대표
  • 승인 2021.11.1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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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카시아의 생명력, 그리고 마을

 

잘 자란 알로카시아 사진
잘 자란 알로카시아


작은 화분 하나도 제대로 키워본 일이 없었는데,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거대한 나무를 선물 받았다. 알로카시아였다. 알로카시아는 동남아시아 열대지방이 원산지인 관엽식물인데 원산지에는 약 70여 종의 알로카시아가 있다고 한다. 국내에 대표적으로 알려진 종은 ‘알로카시아 오도라’로 실내장식 목적으로 넓게 사랑받고 있다. 대부분 그 이름은 몰라도 한 번 정도 본 일이 있는 식물이다.

알로카시아에 대한 첫인상은 굵고 큰 키에 화려하지는 않지만 큰 잎을 가지고 있어, 어디서나 잘 자랄 것으로 보였다. 내 키보다 훌쩍 큰 나무와 흔치 않은 넓은 잎이 주는 첫인상은 그런 강인한 느낌이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이 나무에 대해서는 물 주기 이외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고 두었다. 지금까지 잘 자라왔으니 걱정할 것이 없어 보였다.
 

알로카시아 잎에 맺힌 물방울
알로카시아 잎에 맺힌 물방울


키우다 보니 한 가지 사소한 일이 생겼다. 과하게 습하면 넓은 잎에서 물방울이 맺혀 떨어지곤 했다. 알로카시아를 놓아둔 거실 바닥이 나무여서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는 시점에 알로카시아를 베란다 양지바른 곳에 내놓았다. 열대지방 식물이니, 빛이 좋을수록 알로카시아에 좋은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이기도 했다.
 

원래의 줄기에서 새 잎이 나오는 알로카시아
원래의 줄기에서 새 잎이 나오는 알로카시아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났을까? 어느 날 알로카시아에 물을 주다 보니 잎이 작아졌다. 알로카시아의 잎은 어린잎이 기존 잎의 줄기 사이에 맺히듯이 자라 나온다. 마치 자식을 품었다가 낳는 것 같은 형상이라 보통의 나무에서 새로운 가지가 자라는 것과는 그 모양새가 사뭇 다른데, 양지바른 곳에 내놓은 뒤 새롭게 나오는 잎은 이전과 너무 달라서 의아했다. 잎은 작아지고 녹색 빛은 흐려졌다. 그렇지만, 의아함은 잠시 스쳐 갔을 뿐, 금방 새로운 모습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해 겨울이 지나갔다. 여기서 큰 실수가 있었는데, 알로카시아의 적정한 생장 환경은 10~15℃ 정도이다. 베란다가 아무리 따뜻하다 해도 한 겨울에는 0도 가까이 내려가는데, 이 환경이 알로카시아에는 극한의 상황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갔다. 뿌리가 얼까 싶어 따뜻한 날을 골라서 물 주는 것만 마음을 썼는데, 이렇게 무지한 일이 또 있었을까, 지나고 보니 아쉽다.
 

6월 알로카시아에 맺은 열매
알로카시아에 맺은 열매

그리고, 다시 봄을 지나는 즈음에 알로카시아가 열매를 맺었다. 그런 겨울을 이겨내고 열매까지 맺었으니, 강인한 식물이 맞는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하고 견뎌내는 모양이 참 대단하다 싶었다. 선물한 지인에게도 열매 맺은 일을 자랑삼아 전했다. 이때가 6월 중순이었는데, 열매는 잘 수확해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새로운 알로카시아로 키워주기를 부탁하며 나눔하였다.

선물해준 지인은 알로카시아를 십 년 넘게 키워오고 있는데, 한번도 열매를 본 일이 없다고 한다. 알로카시아를 겨울 동안 영하의 날씨에 내놓는 짓을 하고서도 깨닫지 못한 나는, 사랑과 정성으로 가꾸니 알로카시아도 새로운 생명을 내놓을 만큼 힘을 내는가보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생각은 완전히 틀린 것이었다.

열매를 맺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로카시아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성한 잎이 한쪽으로 몰려서 무게 때문에 그런가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나무가 완전히 꺾여 있었다. 뿌리부터 시작한 무름병이 줄기까지 물러져서 완전히 못 쓰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며칠을 지켜보다 마지막 남은 잎이 안쓰러워 줄기 대부분을 잘라내고 잎 하나 남은 줄기를 새롭게 심어줬다. 이것이 올 8월 일이다.
 

거의 한달만에 천천히 새 잎을 내 놓은 알로카시아
거의 한 달만에 천천히 새 잎을 내 놓은 알로카시아


그제야 알았다. 알로카시아가 열매를 맺은 것은 마지막을 예감하고 자신의 후대를 남기기 위한 최후의 시도를 한 것이라 보였다. 알로카시아가 쓰러지고 나서야 찾아보았다. 어떤 환경에서 잘 자랄 수 있는지, 알로카시아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9월에는 알로카시아를 다시 거실로 들여놓았다. 새로운 흙과 양분 덕분인지, 하나 남은 잎이 겨우겨우 새잎을 내놓았다. 아마도 마지막 남았던 잎이 그대로 사라졌다면 알로카시아의 생명은 완전히 끝났을 일인데, 다행이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더 크기 짙어진 알로카시아 잎
새로운 환경에서 더 크고 짙어진 알로카시아 잎


거실에 들여놓은 뒤 새로 나온 잎은 원래 잎보다 조금 크게 자랐다. 그때까지 알로카시아는 빛을 매우 좋아하는 식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지만 키우면서 관찰하니, 알로카시아는 빛이 적당할 때 더욱 생명력을 발한다는 것이다.

여러날 동안 지켜보면 알로카시아 잎은 빛을 찾아다닌다. 하루 동안 빛을 따라서 잎이 30cm 가까이 움직이기도 한다. 이즈음 걱정은 알로카시아에 과연 새로운 뿌리가 나왔을까 하는 것이었다. 두 잎에서 성장이 멈추고 쓰러질지, 다시 한번 새로운 생명으로 성장을 이어갈지 궁금한 날이 이어졌다.
 

최근 알로카시아 근황은 사진과 같다. 사진에서 앞에 보이는 작은 잎이 하나 남아 있던 잎이다. 이 작은 잎이 5개월 가까이 자기 역할을 하는 셈인데, 환경이 바뀐 뒤 자라나온 잎과 크기와 녹색의 푸르름에서 상당히 대비가 선명한 것을 볼 수 있다.

알로카시아를 거실로 들여놓아 빛이 줄어들자 잎이 다시 커졌다. 그리고 짙어졌다. 성장에 필요한 만큼 광합성을 하기 위함이 분명해 보인다. 양지바른 곳에 내놓았을 때보다 빛이 줄어든 환경이라 아마도 알로카시아에는 이전의 상황이 더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난 일 년 동안 이 알로카시아를 관찰한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면, 지금의 알로카시아가 훨씬 더 생명력이 넘쳐 보인다.

환경은 바뀌기 마련이다. 언젠가 빛이 줄어드는 날이 갑자기 왔을 때 양지바른 곳에서 자란 작은 잎만으로는 달라진 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식물이 아닌 사람의 눈으로 본 것이라 알로카시아의 생각과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나의 눈에 지금 알로카시아는 빛나는 녹색의 생명이 넘쳐 흐른다.
 

첫 잎과 가장 최근에 나온 새잎 비교
첫 잎과 가장 최근에 나온 새잎 비교

전체 사진으로는 잎의 비교가 안 될 것 같아 비교 사진을 만들어 보았다. 보는 것과 같이 크기에서, 녹색의 짙푸름에서 원래의 잎은 새로운 잎에 비해서 초라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이 작고 볼품없는 잎이 현재의 생명을 키워냈다. 그대로 쓰러졌으면 그 뒤는 볼 수 없었을 잎들을 작고 여린 잎 하나가 지켜낸 것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살아남을 길을 찾아가기 마련이지 싶다. 빛이 줄어들자 잎은 커지고 짙어졌다. 분명 이전보다 어려운 상황이 되었음에도 그 어느 때보다 생명력은 짙고 푸르러졌다. 살아남을 길을 알로카시아는 찾아가고 있다.

생명은 식물과 동물에만 국한된 힘은 아닐 것이다. 사람 모여 사는 마을에도 각각의 생명력이 있다. 공간에도 생명력은 존재한다. 그 생명력은 아마도 사람의 관심으로 싹트기로 참여로 성장하고, 환경에서 뿌리내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을에 사뭇 살을 파고드는 찬 바람이 불고 있다. 빛도 흐려져서 마을도 새로운 크고 당찬 잎을 내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이어지는 모습도 보인다. 마을에도 생명력이 있고, 살아 있는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살아갈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작고 약한 잎만 남았다고 해서 실망할 일은 아니다 싶다. 뿌리부터 얼어서 쓰러졌던 알로카시아도 잎 하나로 다시 일어섰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토양을 새롭게 바꿔주고, 영양을 주입하고, 관심과 애정으로 돌보는 노력은 필요했다. 그렇지만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고 잘린 줄기에서 뿌리를 내서 새로운 토양의 영양을 흡수하고, 하나 남은 잎으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낸 힘은 오로지 알로카시아 자신의 힘이었다. 마을의 생명력도 알로카시아의 그것만큼이나 크고 강인하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의 어려움이 더 크고 푸른 잎을 내는 성장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알로카시아가 올봄에 내놓았던 씨앗 근황이 궁금하신 분을 위해서 덧붙인다면, 씨앗은 상당수가 발아해서 잘 지내고 있다.
 

씨앗 나눔받은 이웃이 키워낸 새로운 알로카이사 새싹
씨앗 나눔받은 이웃이 키워낸 새로운 알로카시아 새싹

이제는 씨앗 하나하나가 각자의 생명으로 잘 성장해서 새로운 동반자를 찾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알로카시아의 후손인 만큼 분명 새로운 곳에서도 잘 자라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지금 남은 작은 잎 하나에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87년의 광장에서 몸이 부스러지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역사는 다수의 의지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작은 물줄기는 큰 흐름에서 비켜나가는 일도 있겠지만, 큰 줄기는 결국 바다로 흐른다. 그것을 막은 역사는 없기에, 마을의 생명은 마을을 지키기 위한 길을 분명히 찾아갈 것으로 생각한다.

언젠가는 큰 잎을 낼 것이고, 지금의 고민이 씨앗이 되어 어딘가에서 새로운 싹을 틔울 것이 분명하다. 생명을 가진 세상의 모든 존재가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 이 새로운 작은 나무가 무성한 숲을 이루는 날이 오기를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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