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가 좋다
호숫가의 저녁 풍경(湖天暮景)
좌간서일낙호빈(坐看西日落湖濱)/앉아서 서쪽 해 호숫가로 지는 걸 보니
불시산함불시운(不是山銜不是雲)/산에 걸리거나 구름에 가리지도 않으며
촌촌저래홀전몰(寸寸低來忽全沒)/차츰차츰 내려오다 갑자기 잠겨버리는데
분명입수지무흔(分明入水只無痕)/분명 물속으로 졌건만 흔적조차 없구나
*그 모습 그대로의 자연
중국 송나라(南宋) 때의 전원시인 양만리(楊萬里)의 시입니다.
호숫가에서 낙조를 보며 읊은 시인데, 석양이 떨어지는 장면을 마치 사진을 찍듯 한 컷 한 컷 잡아 시각적 이미지로 연결해 놓았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 늦가을 쓸쓸한 호숫가 풍경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장면이 넘어갈 때마다 자연의 색조가 달라지고, 마침내는 석양이 호수에 빠져 흔적조차 사라지고 맙니다.
이때의 낙조야말로 장중한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합니다. 자연은 그 모습 그대로 완벽한 예술을 창출해내는데, 그것이 음악이 되고 그림이 되고 시가 됩니다. 그래서 그 음악은 귀로 음미하고, 그 그림은 눈으로 감상하고, 그리고 그 시는 가슴으로 느끼게 합니다.
저작권자 © 종로마을 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