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출토 금속활자들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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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출토 금속활자들의 가치
  • 엄소연 박사
  • 승인 2021.10.2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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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구역 도시환경 정비사업부지에서 발굴

 

지난 6월, 종로구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탑골공원 인근 ‘공평구역 도시환경 정비사업부지’인 인사동 일원에서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조선전기 금속활자가 대거 발굴된 것이다. 무려 1,632점에 달하는 금속활자들이 항아리 속에 담겨있었다. 또한, 그 주변에는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주야간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세종 때 제작)와 물시계의 부품인 주전(籌箭)(세종~중종 때 사용)이 최초로 발견됐고, 승자총통 8점과 동종 1점도 출토됐다.

항아리에 담겨있던 금속활자들(출처: 문화재청)
항아리에 담겨있던 금속활자들(출처: 문화재청)

 

금속활자는 인쇄의 속도 및 정확성을 높여 서책의 보급을 증대시킴으로써, 지식과 정보의 공유를 확산하고 인간의 삶과 사회문화의 발전을 이룬 인류의 중요한 기술이다. 고려 시대에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사용한 기록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1377)1)을 출간했지만. 현존하는 고려 시대 활자는 10점이 채 안 됐었다. 그런데, 이번에 금속활자 1,600여 점이 대거 발견됐으며 조선 초기 경자자(庚子字, 1420년 제작), 갑인자(甲寅字, 1434년 제작), 을해자(乙亥字, 1455년 제작), 을유자(乙酉字, 1465년 제작)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는 물론 세계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고 이건희 회장 기증 갑인자본
고 이건희 회장 기증 갑인자본

 

이 중에서 53점은 얼마 전 국립고궁박물관의 소장품인 『근사록(近思錄)2)』과의 비교를 통해 갑인자로 확인됐다. 마침 지난 4월,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의 국립중앙박물관 기증품 중에 『근사록』(1436)이 있고, 현재 ‘조선1실’에서 이건희 기증품 『석보상절(釋譜詳節)』 초간본(1447)과 갑인자로 추정되는 금속활자 152점을 전시하고 있다. 갑인자가 중요한 이유는 조선 시대 활자본의 백미이자 세 번째 금속활자로, 정조 때까지 6번이나 주조된 국가 표준 활자였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이천, 장영실, 수양대군 등 최고의 인재들에게 만들게 한 갑인자는 <조선왕조실록>에 "글자가 깨끗하고 바르며 일하기의 쉬움이 예전에 비해 갑절이나 됐다"라고 기록돼있다. 또한, 조립식 활자로서 약동적이며 선명하고 아름다우며 정교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발굴된 한글 활자 600여 점이다. 이들은 갑인자와 을해자로, 함께 발굴된 최초의 사례이다. 아직 연구단계에 있지만, 학계에서는 “세조 때 주조돼 1550~60년대 사용했던 활자일 것이라고 보며, 일부는 선조 때(1580~90년대) 사용했던 경서자(經書字)3) 한글 활자와도 유사한 것 같다”고 보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전경(출처: 문화재청 누리집)
국립고궁박물관 전경(출처: 문화재청 누리집)

 

현재 한글 활자를 포함한 출토유물들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이전돼 있다. 발굴을 주관한 곳이 문화재청이고 국립고궁박물관은 그 산하기관이기 때문이다. 출토유물들은 보존처리와 연구를 거쳐 11월경 최초로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라 한다. 유물의 성격상 청주고인쇄박물관이나 내년 개관하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을 운영할 국립한글박물관도 관심이 클 것이다. 특히, 청주고인쇄박물관은 30여 년의 금속활자 복원사업의 노하우로 이번에 발굴된 조선 초기 금속활자들을 처음 검증한 곳이기도 하다. 정밀한 보존처리와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인사동 출토 금속활자들의 ‘의미 있고 중요한’ 가치가 발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청주고인쇄박물관 전경(출처: 청주고인쇄박물관 누리집)
청주고인쇄박물관 전경(출처: 청주고인쇄박물관 누리집)

 

1)고려 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고금상정례』의 서문을 1234~41년에 강화도에서 금속활자로 28부를 인쇄했다는 기록이, 현재 세계적으로 금속활자의 사용과 관련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직지심경』(『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은 세계적으로 남아있는 금속활자로 찍은 책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고려 시대 때 발명한 금속활자는 1423년 네덜란드의 코스타가, 1450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보다 300여 년 앞선다고 할 수 있다.

2)주희가 쓴 주자학의 입문서이자 교과서이다.

3)경서 전용 놋쇠 활자체. 경서를 언해하여 찍어 냈다고 하여 여기에 나타난 글자꼴을 경서체(經書體), 활자는 경서자라고 한다. 한자 서체는 을해자와 닮게 하였으면서도 새롭게 하였다고 하여 을해자체 경서자, 언해한 한글은 경서자 한글자라고 부른다. 을해자 한글자보다 자형을 상하로 긴네모꼴로 나타내고, 점획을 부드럽게 붓으로 쓴 느낌이 나게 나타냈다(『한글글꼴용어사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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