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전환
상태바
거대한 전환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1.10.22 1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를 감동시킨 한 권의 책

 

이 책은 650여 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다. 게다가 글씨까지 작아 읽을 분량이 만만치 않다. 이 책을 완독하고 독후감을 쓰고 있는 순간의 감정은 감격 그 자체이다. ‘아~ 내가 마침내 이 책을 다 읽고 독후감을 쓰는 시간 앞에 와있구나. 역시 모든 것은 지나가게 되어있구나’

이 책은 그만큼 오랜 시간에 걸쳐 읽었다. 책의 분량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어렵고 딱딱한 전문내용이 많아 읽어가는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금씩 조금씩 읽어간 시간이 거의 서너 달에 이르고 중간 사이사이 공백 기간까지 합치면 총시간은 일 년에 이른다.

 

자본주의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동으로 조정되는 자정 기능이 없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오래전에 생각하게 된 연유는 저자 칼 폴라니 때문이다. 칼 폴라니라는 이름을 처음 대하게 된 것은 피터 드러커의 <방관자의 시대>라는 책이었다. 그 책 또한 두툼했지만, 이 책 <거대한 전환>보다는 쉽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방관자의 시대>라는 책도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데는 충분하고 넘친다. 그 책에서 기억이 나는 것은 칼 폴라니가 2차 세계대전 시절 오스트리아의 어느 신문사 편집인으로 일할 때의 일화이다. 피터 드러커는 칼 폴라니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식탁에 모여 앉아 가족들이 하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는다. 신문사 편집인이면 당시에도 상류층 직업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집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식탁에서 생활의 궁핍한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고 칼 폴라니가 월급은 받아서 다 뭐하냐고 묻자 모두 어렵게 사는 세월인데 어떻게 월급을 받아 모두 우리를 위해서만 쓰냐면서 자신의 월급에서 일정 부분을 반납하고 나머지 적은 돈으로 가족이 서민 아파트에서 힘들게 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기주의와 탐욕이 넘치는 세상에서 항상 분주하게 사는 나로서는 그런 행동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당시의 감동이 칼 폴라니 이름 넉 자와 함께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새겨져 왔다.

내가 읽은 <거대한 전환>의 요점은 한마디로 충분하다. “자본주의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동으로 조정되는 자정 기능이 없다”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시장의 원리를 말하면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데서 가격이 형성되고 모든 시장은 그 자체로 조정기능이 있어서 어떠한 상황도 시장 안에서 자동으로 해결된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손이다. 뭐 이렇게 배우고 또 알고 있었다. 그러한 생각에 망치를 내려치는 책이 바로 <거대한 전환>이다. 양서는 이렇게 항상 머리를 무언가로 내리치는 듯한 충격을 준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경제적 역사 사실에 대한 통렬한 반박

이 책은 모두 3부 2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별로 많지 않은 듯한 챕터 속에는 폴라니의 엄청난 지식과 분석력 그리고 세상을 보는 혜안이 들어있다. 1부와 3부에서는 당시의 세계정세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세계 1차대전, 세계 대공황, 파시즘의 발생, 미국의 뉴딜정책 등 제목 하나하나는 우리 귀에 익숙한 단어들이다. 그것들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전개된다. 2부는 이 책의 본론, 즉 칼 폴라니의 생각과 해법이 들어있다. 시장을 이루는 노동, 토지, 화폐의 허구성, 사회와 시장과 체제와 인간 등 우리 삶 전부에 대한 구조적이고 과학적인 내용이 들어있다.

폴라니는 유럽 문명이 산업혁명 이후로 넘어가는 ‘거대한 전환’의 시기에 나타나는 여러 사상과 이념, 사회적, 경제적 정책들의 변화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폴라니의 분석은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경제적 역사 사실을 통렬히 반박한다. 역사적 분석을 재구성한다고나 할까. 시장의 자기 조정기능은 절대 작동하지 않으며 경제가 성장을 이루면 가난한 자도 포함하여 모두가 혜택을 본다는 것 또한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낙수효과에 대해 전면 부정한다. 우리는 자유경제를 통해 경제가 활성화되어 대기업이나 부자에 돈이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그 돈은 아래로도 떨어져 가난한 사람에게도 이득이 돌아간다는 이른바 ‘낙수효과’를 자주 들어왔고 또 믿어왔다. 또 시장이란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저절로 통제되고 조정되는 자정 기능이 있다고 알고 있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동 조정된다’라는 말은 애덤 스미스가 한 말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가가 시장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 그런 말을 했다. 현대의 진보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은 애덤 스미스의 이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멋진 말로 반박을 한다. “그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냥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칼 폴라니 또한 ‘보이지 않는 손’은 그저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시장은 반드시 정부가 간섭과 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그 얘기가 전부다. 두꺼운 분량 속에는 유럽의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시장경제가 형성되면서 누구나 시장의 기능에 대해 신봉하고 정부의 간섭이 적은 자유주의야말로 좋은 경제체제라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모두 틀렸다는 것이다. 칼 폴라니의 이러한 말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시대를 보면서 더욱 절실한 말임을 깨닫게 된다. 시장은 통제되지 않으면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칼 폴라니의 주장이다. 사회에 떠도는 각종 경제 및 사회 이데올로기는 모두 부자들과 그들과 이익을 함께하는 소수의 집단이익만을 위한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좋은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칼 폴라니는 이 책 1부에서 말한다. “이 자기 조정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한마디로 완전히 유토피아다. 그런 제도는 아주 잠시도 존재할 수가 없으며 만에 하나 실현될 경우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내용물은 아예 씨를 말려버리게 되어있다. 인간은 그야말로 신체적으로 파괴당할 것이며 삶의 환경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

시장경제의 충동질로 인하여 인간을 노동으로, 자연을 토지로 환원시켜버린 결과 사회는 쇠사슬에 묶여버렸고 현대는 그 쇠사슬에 묶인 주인공이 사슬을 풀기 위해 극도의 긴장감 속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산업혁명 이후의 최대의 비극은 이윤추구의 무정하고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의 몫도 크지만, 그것보다는 그것을 촉발한 통제되지 않은 시장경제에 더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폴라니는 이 책을 통해서 자유시장의 실체를 폭로하고 있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자기 조정 시장경제란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고.

칼 폴라니의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의 주장이 틀렸으면 하는 바람이 문득문득 든다. 그만큼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 잘못 아는 것에 대한 억울함과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진실이 세상 밖으로 나올 때 우리가 받는 충격은 너무 크다.

이 책은 내용도 쉽지 않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읽다 보니 앞 내용의 기억이 흐릿해지고 그래서 뒷부분과 연결이 잘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어찌어찌 그냥 읽게 되었고 마침내 완독의 시간이 왔다. 모든 책은 완독하면 반드시 그 책의 주제가 희미하게 머릿속에 들어온다. 완독의 효과가 있다.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볼 일도 없는 폴라니 같은 사람의 책을 읽게 되어 기쁘다. 책이란 이렇게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을 연결한다. 책 내용이 그리 유쾌한 기분이 들게 하지는 않았지만, 세상을 다시 한번 보게 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진리를 말하는 책일수록 독서 후의 기분은 무겁다. 진리란 그렇게 부담스러운 것인가 보다. 세상에 속지 않고 내 눈으로 세상을 바로 보는 길은 그래서 독서밖에 없다. 좋은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오랜 숙제를 끝마친 것 같은 오늘은 저녁에 홀가분한 기분으로 술 한잔을 해야겠다. 진리를 통해 보는 세상보다 알코올을 통해 보는 세상은 언제나 만만하고 더 아름답다. 완독의 축배를 들자.

거대한 전환/칼 폴라니/도서출판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