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할머니 귀는 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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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죽 할머니 귀는 보배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1.10.10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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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주는 이야기

 

시골 청년이 지게에 팥을 짊어진 채 장거리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권세 높은 대감의 행차가 지나갔는데, 시골 청년은 어물어물하다 너무 당황하여 팥 자루를 떨어뜨렸습니다. 이때 동여맨 자루가 풀어지는 바람에 팥알들이 길바닥에 흩어졌습니다.

“아이고! 내 팥, 아까운 내 팥!”

시골 청년은 어찌할 줄 모르고 쩔쩔매기만 하였습니다.

“네 이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길을 가로막느냐?”

방망이를 든 나졸이 시골 청년에게 달려와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시골 청년은 아까운 팥을 두고 그 자리에서 물러날 수가 없었습니다. 1년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어 수확한 곡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봐라! 어서 저 시골뜨기를 끌어내지 못할까?”

그때 포도대장이 나서며 나졸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나졸은 시골 청년의 멱살을 잡아 길 가장자리로 끌어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도 시골 청년은 팥 자루를 꼭 움켜쥔 채 놓지 않았습니다.

 

마침 길가에 팥죽 파는 집이 있었습니다. 나졸은 시골 청년을 팥죽 할머니에게 맡기며 말했습니다.

“이 녀석은 대감님 행차를 방해한 죄인이니 꼭 붙들어두시오. 대감님 행차를 뫼시고 와서 반드시 그 죄를 물을 것이니.”

“아이고!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든 시골 청년은 나졸을 향해 두 손을 싹싹 빌었습니다.

“너 같은 촌놈은 혼 좀 나 봐야 해. 할멈! 만약 이 녀석을 달아나게 하면 할멈에게 그 죄를 물으리다.”

나졸은 이렇게 팥죽 할머니에게까지 호통을 치더니 서둘러 대감 행차를 따라갔습니다.

“츳츳! 어쩌다 이 지경이 됐소? 대감 행차 앞을 얼쩡거리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것도 모르셨소?”

팥죽 할머니는 벌벌 떨고 서 있는 시골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시골 청년은 더듬거리는 말투로 방금 일어난 사건을 팥죽 할머니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럼! 지금 들고 있는 자루에 팥이 들었구먼?”

“네! 늙으신 어머니께서 병환이 나셨는데, 이 팥을 팔아 약을 지어다 드리려고 장에 나온 겁니다.”

시골 청년은 거의 울상이 되어 말했습니다.

팥죽 할머니는 딱한 얼굴로 다시 한번 혀를 차더니, 문득 시골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그 팥 자루 여기 내려놓고 가시오. 자, 이건 어머니 약값으로 쓰고.”

“네에? 이 팥을 사시겠다고요? 그리고 저를 놓아주신단 말씀입니까?”

시골 청년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습니다.

“아무 말 말고 어서 가요. 아까 그 나졸이 들이닥치기 전에.”

팥죽 할머니는 시골 청년의 손에 돈을 쥐여주며 등을 떠밀었습니다.

“그, 그러면 할머니께서 난처해지실 텐데……. 할머니가 저 대신 죄를 뒤집어쓰면 어떡해요?”

시골 청년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난 늙었으니 별일 없을 거요. 그보다 청년은 어머니 약을 지어야 할 테니 어서 가보시오.”

이렇게 팥죽 할머니가 여러 차례 등을 떠밀자, 시골 청년은 그때서야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쳤습니다.

한동안의 시간이 흐른 후에 아까 그 나졸이 나타났습니다.

“아니, 죄인은 어디 갔소?”

나졸은 시골 청년을 찾았습니다.

“벌건 대낮에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 그만하고 팥죽이나 한 그릇 들고 가소.”

팥죽 할머니는 아주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할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요? 아까 내가 맡겨둔 그 촌뜨기 녀석 어디 갔느냔 말이오?”

나졸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는 모르오. 오늘 그런 사람 구경한 적도 없으니까.”

팥죽 할머니는 이렇게 시치미를 딱 잡아뗐습니다.

“허헛, 참! 포도대장이 그놈을 꼭 잡아 오라고 했는데…….”

생각다 못한 나졸은 시골 청년 대신 팥죽 할머니를 끌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포도청에 들어가자, 포도대장이 나졸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아니 아까 그 시골뜨기 녀석은 어쩌고 저런 늙은 할망구를 데리고 온 것이냐?”

나졸은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자초지종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포도대장은 팥죽 할머니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할멈!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면 큰 벌을 받을 것이오. 왜 대감의 행차를 가로막은 그 시골뜨기 녀석을 놓아준 거요?”

그러나 팥죽 할머니는 딴청을 하고 먼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어서 바른대로 말하시오!”

다시 포도대장이 아까보다 큰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난 너무 나이가 많아서 먹고 살기도 힘들어요.”

팥죽 할머니가 엉뚱한 말을 했습니다.

“딴소리 말고 어서 그 시골뜨기 녀석의 행방을 대란 말이오!”

“난 그저 팥죽이나 팔고 사는 늙은이라오.”

팥죽 할머니가 계속 딴소리를 하자, 포도대장은 나졸을 향해 호통을 쳤습니다.

“이 녀석아! 죄인을 잡아 오랬더니만 하필이면 귀머거리 할망구를 잡아 오면 어찌하란 말이냐?”

화가 난 포도대장은 나졸에게 죄를 물어 곤장을 때렸습니다.

포도청에서 풀려나온 팥죽 할머니를 보고, 이런저런 소문을 통해 사실을 알게 된 이웃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아니, 애꿎은 나졸이 곤장을 맞도록 하면 어쩝니까?”

“그 나졸은 젊으니 곤장 몇 대쯤은 맞아도 괜찮소. 그러나 시골 청년이 포도청에 잡혀 들어가면 죽도록 곤장을 맞을 것이며, 늙은 어머니 약도 지어다 드리지 못할 것 아니오?”

이와 같은 팥죽 할머니의 말에 이웃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참 할머니 귀는 요상하네요. 우리 앞에서는 잘 들리는데, 포도대장 앞에서는 안 들리니 말이오.”

그러자 팥죽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암! 내 귀는 보배라오. 좋은 소리는 잘 들리고 나쁜 소리는 잘 안 들리거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때의 옳고 그름은 법에 따라 죄를 묻는 고지식함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사정을 살펴 판단의 기준을 달리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법대로’라는 말처럼 무지몽매한 것도 없습니다. ‘법(法)’보다 우선되는 것이 ‘정(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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