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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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판결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1.09.1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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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주는 이야기

 

당장 입에 풀칠할 양식도 없어 늘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겨우겨우 날품을 팔아 끼니를 이어가고 있는데, 농부는 어느 날 마을 앞 냇가에서 잠시 쉬다가 수달을 발견하였습니다. 수달 한 마리가 물가로 기어 나오다 사람을 발견하고는 급한 나머지 바로 옆에 뚫려 있는 족제비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옳지, 잘 됐다! 저놈 한 마리만 잡으면 며칠 동안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는걸?”

농부는 얼른 지게에서 괭이를 꺼내 방금 수달이 사라진 족제비 굴을 파헤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달은 털가죽이 부드럽고 따뜻했는데, 그래서 수달피는 가죽옷이며 목도리를 만드는 데 최상품으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값도 꽤 비싸 농촌 사람들은 수달 한 마리만 잡으면 마치 산삼 한 뿌리를 캔 것처럼 횡재했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마치 산삼이라도 캐듯 아주 조심스럽게 수달이 사라진 족제비 굴을 파 내려갔습니다. 거의 굴을 다 파 내려갔을 때 숨어 있던 수달이 잽싸게 튀어나왔습니다.

그 순간 농부는 괭이로 수달의 몸통을 내리눌렀습니다. 그런데 수달은 괭이를 피해 달아나다 한쪽 다리를 찍히고 말았습니다.

다시 농부가 괭이를 들어 올려 내리치려는 순간 수달은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달아났습니다. 농부는 얼떨결에 괭이까지 팽개친 채 손으로 수달을 잡으려고 쫓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수달은 마을 쪽으로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그 마을의 부잣집 바깥마당에서 어슬렁거리던 개가 수달을 발견하고 한입에 덥석 물어버렸습니다.

“안 돼! 그 수달은 내가 잡은 거다!”

농부는 개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훈련을 잘 받은 개는 수달을 물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농부가 그 집으로 따라 들어가자 개 주인인 부자 영감이 수달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영감님! 그 수달은 제가 잡은 겁니다. 그러니 제게 넘겨주십시오.”

그러자 부자 영감이 펄쩍 뛰었습니다.

“이 수달은 내가 기르던 개가 잡은 것이니 내 것이다. 어째 자네 것이라고 우기는가?”

“아닙니다. 저 마을 앞 냇가에서 제가 수달을 발견하고 괭이로 내리쳐 잡은 겁니다. 수달의 한쪽 다리를 보면 괭이 자국이 있을 것입니다.”

“이건 우리 개가 문 자국이야.”

부자 영감도 지지 않았습니다. 벌써 그의 생각 속에서는 수달피로 목도리를 만들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농부와 부자 영감은 수달을 놓고 옥신각신하다가 관가로 가서 원님에게 수달의 주인이 누구인지 옳은 판결을 내려달라고 청하게 되었습니다.

관가 마당에는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농부와 부자 영감의 말을 들은 원님은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수달의 다리에 난 상처가 괭이 자국인지 개에 물린 자국인지도 판가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원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봐라! 농부가 수달을 잡으려고 굴을 파는 수고를 하였으니 농부에게도 한몫을 주어야 하고, 나중에는 달아나는 수달을 개가 잡았으니 그 개의 주인에게도 한몫을 주어야 한다. 그러니 두 사람이 이 수달의 몸뚱이를 똑같이 나눠서 갖도록 하라!”

어찌 보면 원님의 그런 판결은 공평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농부와 부자 영감은 똑같이 실망하는 얼굴이었습니다. 만약 수달의 몸뚱이를 반으로 나눈다면, 진짜 귀중한 수달피는 반 토막이 나서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굴을 파고 쫓지 않았다면 어찌 개가 수달을 잡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니 저 수달은 제가 가져야 마땅합니다.”

농부는 계속 자신이 수달의 진짜 주인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아닙니다. 만약 우리 개가 수달을 잡지 않았다면 저 농부는 영영 놓쳐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부자 영감도 자신이 수달을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허허! 이것 참, 난감한 일이로군!”

원님은 손으로 수염만 쓰다듬으며 쉽사리 판결을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바로 그때 구경꾼 중에서 한 소년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습니다.

“사또! 제가 한 번 판결을 내려 보면 어떻겠습니까?”

“뭐라고? 네가 판결을? 그래, 너라면 어떤 판결을 내리겠느냐?”

원님이 물었습니다.

“잠시 사또의 권한을 제게 주십시오. 그러면 그 당상에 올라가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허허! 당돌한 녀석이로군! 그래, 어디 한 번 네가 판결을 내려 보거라!”

원님은 과연 어찌하나 보기 위해 소년에게 당상을 비워주었습니다. 당상에 올라앉은 소년은 점잖게 말했습니다.

“여봐라! 수달을 쫓은 것은 사람이고 잡은 것은 개이니라. 따라서 사람의 욕심은 수달피에 있고 개의 욕심은 그 고기에 있으니, 그 수달의 털가죽을 벗겨 농부에게 주고 그 고기는 개에게 주도록 하라.”

소년의 말이 떨어지자 구경꾼들이 모두 손뼉을 치며 과연 명판결이라고 떠들어댔습니다. 원님도 그 판결이 옳다고 여겨 수달피는 농부에게 주고, 그 고기는 개에게 주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명판결을 내린 소년은 어른이 되어 과거에 급제하였고, 어진 목민관이 되어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며 백성들을 잘 다스렸습니다.

 

☞ 욕심에 눈이 어두우면 사리판단 능력이 저하됩니다. 따라서 세상 경험이 많은 어른보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어린이가 어떤 면에서는 더 정확하게 사물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는 순수한 마음 안에 깃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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