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이 우에니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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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이 우에니껴?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1.09.0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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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한 권의 책

 

 

술을 부르는 안주가 있듯이 독후감을 부르는 책이 있다. 처음 이 책을 대할 때만 해도 그저 심심풀이 파적으로 시간이나 좀 죽여 보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진도가 나가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저자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터넷에서 이름을 검색하게 되었고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마침내는 독후감을 쓰지 않고는 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까지 되었다. 이 책의 무엇이 나를 독후감의 수고까지 치르게 하였을까? 첫째는 유머다. 중간중간 소나무 옹이처럼 박혀있는 유머와 글 전체에서 풍기는 은근한 해학은 책을 읽는 재미를 증폭시킨다. 저자만의 특유의 문체라고 할까, 이리저리 굽어지는 은유적 표현과 시공간의 원근을 아우르는 타임머신 같은 비유법은 문장의 이해도와 독자의 상상력을 충분히 자극하고도 남는다.

스스로 산문이라고 겸손을 떨고 있지만, 그 속에 촌철살인의 유머와 해학 그리고 사회를 보는 그의 안목과 깊이를 읽어낼 수 있다. 사투리 억양의 제목부터 처음 보는 저자의 특이한 이름까지 어느 것 하나 심각하거나 진지할 것 없다고 생각되지만 읽어가면서 참을 수 없는 웃음과 송곳 같은 사회적 혜안으로 그야말로 웃다가 울다가 냉․온탕을 드나드는 감동을 준다.

넘치는 유머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유머책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과학서적에 더 가깝다. 그만큼 해학과 비평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는 이름부터가 재미있다. 그의 이름 서각은 쥐뿔의 한자어다. 쥐뿔도 모른다는 뜻이라고 한다. 물론 부모님께 받은 이름은 아니다. 후일 스스로 지어 애용하는 겸손과 유머의 애칭이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도 서각이라는 호를 썼다고 하는데 거기서 빌려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다가끼 마사오와 전도깐을 싫어한다. 그리고 치산치수를 좋아하는 지도자를 경멸한다. 안동댐이라는 거대한 보를 만들어서 퇴계 선생이 거닐던 자연을 모두 물속에 집어넣은 사람을 미워한다. 그는 자기 고향에서 대화하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조금만 말하면 바로 좌익빨갱이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그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피어나고 평화가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대통령의 서거를 슬퍼한다. 그리고 불가능한 일에 도전했던 바보 대통령을 좋아한다. 그는 말한다. “바보들이 하나둘 떠나간 조선국의 하늘은 슬프도록 푸르다."

그는 여러 명의 문학인과 교류한다. 그중에는 권정생도 있다. 그의 집에 방문해 간장 한 종지로 소면을 삶아 먹은 일도 있다. 권정생에 대한 저자의 존경은 그윽하다. 그는 말한다. "내가 교사를 하며 밥을 먹는 동안 동화작가는 기념비적인 동화를 썼다. 그가 쓴 '우리들의 하느님'이라는 수필을 읽고 문득 성자가 된 그가 보고 싶었다." 그가 말하는 문인들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 줄 알게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결혼한 소설가 김형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주변에서 결혼을 왜 그리 일찍 했느냐고 물으면 그의 답변은 항상 똑같다. "늦게 하면 그걸 마이 못하니까."

교사에 대한 그의 고백도 재미있다. "교사가 되기 전 나는 교사가 늙으면 교장이 되는 줄 알았다. 교사가 된 후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 데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교장이 되는 일은 아이들 교육보다는 자기 점수관리에 올인해야 한다는 것을~"

새옹지마와 견줄만한 새로운 고사성어도 소개한다. 이름하여 '족가지마(足家之馬)'-족씨 집안의 말이라는 뜻이다. 옛날 족씨 가문과 수씨 가문이 살았는데 수씨 집안의 아들이 말을 잘 타는 모습을 보고 족씨 집안의 아들도 폼 나게 말을 타보려다가 그만 낙상해 크게 다치게 되었는데 이로부터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삽질을 하는 이를 일러 '족가지마'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ㅋㅋㅋ

서울에서 시골에 내려와 놀고먹는 소위 먹물 베짱이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한다. 첫째, 수염이 길거나 꽁지머리다. 그렇지 않으면 모자를 쓴다. 둘째, 막걸리를 즐겨 마신다. 셋째, 예술애호가이다. 넷째 일정한 수입이 없다. 그의 혜안에 찬탄을 보낸다.

욕쟁이 용두스님 이야기는 배꼽을 쥐게 한다. 스스로 땡초라 말하는 용두스님이 시장에 왔다. 지인이 그를 보고 말한다. "중놈이 어찌 시장에 내려왔는가?" 스님이 말한다. "0 하러 왔다 왜?" 놀란 친구가 말한다. "스님이 뭐 그런 말씀을 하노?" 스님이 말한다. "너희는 여자하고 하지만 나는 하늘하고 한다."

어느 날 스님이 절에 온 여자들에게 뭐 하러 왔느냐고 묻자 여신도들이 "큰 스님 뵈러 왔지요."하자 스님 왈 "니년들이 큰 걸 아느냐?" 여자들이 낄낄거리며 "큰 스님 말씀은 욕도 법문이라니까."

그 외에도 초교 교사인 봉두와의 일화 등 재미난 이야기가 넘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불만이 있다. 책 제목이다. “그르이 우에니껴?” 저자는 독자를 경상도 사람으로 한정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어렵고 난해한 제목을 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려운 사투리 제목이 주는 엉뚱함과 난해함 그리고 책이 가볍겠다는 쓸데없는 오해를 발생하는 절대적인 약점을 제목이 부여한다. 이 책은 최소한 100쇄까지 가야 할 책 임에도 제목이 그것을 모두 까먹었다. 저자는 다음부터 출간할 때는 제목에 대해 재고 삼고 하시기를 바란다. 그래서 다시는 이 땅에 좋은 책을 못 알아보고 안타까워하는 나같이 불행한 독자가 생기지 않게 하기를 바란다.

그르이 우에니껴?/권서각/푸른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