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명한 아들과 가짜 금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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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명한 아들과 가짜 금덩어리
  • 엄광용 작가
  • 승인 2021.09.02 1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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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주는 이야기

 

옛날 어느 고을에 열심히 땀을 흘려 돈을 번 부자 영감이 있었습니다. 평생 아끼고 아껴서 모은 재산으로 그는 외아들을 공부시켰습니다. 늦도록 자식이 없다가 나이 들어 얻은 외아들은 어려서부터 아주 총명하여 글공부뿐만 아니라 뛰어난 지략도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불과 열두 살의 나이에 사서삼경은 물론, 병법서까지 두루 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독선생을 앉혀 공부를 시켰습니다.

어느 날, 떠돌이 장사꾼이 부자를 찾아와 금덩어리 하나를 내놓으며 말했습니다.

“영감님! 장사를 하다 보니 돈이 떨어져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 금덩어리를 맡길 테니 돈 오천 냥만 꾸어주십시오. 몇 만 냥은 나가는 금덩어리라 쉽게 팔리지도 않고, 급전은 필요하고 해서 영감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이자는 후하게 쳐 드리겠습니다.”

처음 보는 장사꾼이었지만, 부자 영감은 선뜻 돈 5천 냥을 내주었습니다. 금덩어리를 맡겨놓겠다니 돈 떼일 염려가 없는 데다 이자까지 비싸게 쳐주겠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장사꾼이 다녀가고 나서 며칠 후 금광에서 일하던 조카가 다니러 왔습니다. 부자 영감은 조카에게 금덩어리를 보여주며 팔면 얼마나 가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한참 금덩어리를 들여다보며 손으로 무게를 재어보던 조카가 말했습니다.

“아이고, 아저씨 이건 가짭니다. 납덩어리에다 금물을 살짝 입힌 거라고요.”

“뭐? 가, 가짜라고?”

부자 영감은 조카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카는 젓가락으로 금덩어리를 긁어 얇은 금박이 벗겨지게 하였습니다. 과연 금박을 벗겨내자 시커먼 납덩어리가 나타났습니다.

“이건 어디서 얻으신 겁니까?”

조카의 물음에 부자 영감은 며칠 전 이름 모를 장사꾼이 와서 급전 5천 냥을 꾸어가면서 맡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깜빡 속았구먼. 이를 어쩐다?”

부자 영감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습니다.

조카가 떠나고 나서 부자 영감은 장사꾼에게 사기당한 돈 5천 냥이 너무 아까워 그만 몸져눕고 말았습니다.

“그 돈이 어떤 돈인가? 내가 평생 못 먹고 못 입으며 만든 돈인데. 아이쿠, 이제 나는 망했습니다.”

부자 영감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끙끙 앓았습니다.

옆에서 몸져누운 아버지를 지켜보던 열두 살 난 아들이 사연을 물었습니다. 부자 영감은 마누라한테까지 숨기고 있던 이야기를 아들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아버님, 염려 마세요. 제가 찾아드리지요.”

아들이 눈을 빛내며 말했습니다.

“아니, 네가 어떻게? 그 장사꾼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 자인 줄도 모르는데.”

아들은 아버지의 귀에다 대고 돈을 찾는 방법을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렇게만 하시면 그 장사꾼이 며칠 안에 제 발로 찾아올 것입니다.”

“옳은 말이로다!”

부자 영감은 아들이 시키는 대로 다음 날부터 인근의 장터를 돌아다니며 다음과 같이 소문을 냈습니다.

“아이고, 내 며칠 전에 이름 모를 장사꾼에게 금덩어리를 담보로 돈 오천 냥을 꾸어주었는데, 간밤에 그 금덩어리를 도둑맞고 말았지 뭐요. 금덩어리 값만 해도 수만 냥은 될 터인데, 이제 우리 집은 망했습니다.”

부자 영감은 장터의 술집이나 밥집을 돌아다니며 이렇게 신세 한탄을 늘어놓고 나서 집에 돌아와 장사꾼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그 소문은 인근 장터 바닥에 쫙 퍼져나갔습니다. 부자 영감에게 가짜 금덩어리를 맡기고 돈 5천 냥을 가져간 장사꾼의 귀에도 그 소문이 흘러 들어갔습니다.

“옳지 잘 됐다! 가짜 금덩어리 값까지 받게 생겼구나!”

장사꾼은 그 소문을 듣자마자 비상하게 머리를 돌렸습니다. 약속대로 이자까지 듬뿍 얹어 원금 5천 냥을 가지고 가서 금덩어리를 내놓으라고 하면, 졸지에 수만 냥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장사꾼은 그동안 돈 5천 냥을 다 써버려서 부자 영감에게 돌려줄 원금조차 마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공짜로 생긴 돈은 손바닥에 고인 물처럼 술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게 마련이었습니다. 생각다 못한 그는 땅문서를 맡기고 다른 마을 부자 영감에게 가서 급전을 빌렸습니다.

장사꾼은 이렇게 빌린 돈을 들고 가짜 금덩어리를 맡겼던 부자 영감을 찾아갔습니다.

“영감님 덕분에 아주 장사가 잘 되어 이렇게 원금에 이자까지 마련해 가지고 왔습니다. 이제 제가 맡긴 금덩어리를 내어주시지요.”

그때 부자 영감은 빙그레 웃으며 장사꾼으로부터 돈을 받은 다음 가짜 금덩어리를 꺼내놓았습니다.

한쪽 귀퉁이의 금박이 벗겨져 시커먼 납덩어리가 드러난 가짜 금덩어리를 본 장사꾼은 어찌할 줄 몰라 우왕좌왕하였습니다.

“네 이놈! 어디서 가짜 금덩어리로 사람을 속이려 드느냐?”

부자 영감은 미리 대기시켜놓았던 하인을 불러 장사꾼에게 오라를 지웠습니다.

“아이고, 영감님! 한 번만 봐주십시오.”

장사꾼이 발버둥을 쳤지만 두 손을 결박당한 처지라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관가에 끌려가 그 죄에 값하는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꾀 많고 욕심이 강한 사람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얕은꾀로 다른 사람을 속이려다 욕심에 눈을 가려, 그 꾀가 자신의 함정인 줄 모르고 뛰어들어 결국 그 스스로 속는 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