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뭐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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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뭐하는 거지?
  • 예현숙 박사
  • 승인 2021.08.2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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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심리치료사 예현숙 박사

 

 

옆에서 보기에 사소한 일 같지만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 만한 부부 이야기를 소개한다. A 부부는 결혼 전 서로의 외로움을 만져준 지극히 좋은 친구 사이였다. 결혼하면 더 좋을 거라고 믿었지만 아내는 큰 불만이 생겼다. 남편이 공감할 줄 모르고,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면 소리를 빽 지른단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이것 때문에 몹시 괴롭다. 남편은 남편대로 답답함을 하소연한다. 아내가 자신의 틀에 갇혀 자기를 이해해 주는 대신 평가하기 때문이다.

 

 지쳐가는 부부, 성장하는 부부

부부 B는 두 명의 어린 자녀를 둔 평범한 30대 말 부부이다. 연애 때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사랑했기에 결혼생활에 대한 부푼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그렇지만 이들 역시 서로에게 한 치의 양보도 없으며 팽팽하다. 성격적으로 좋은 보완관계지만 사소한 차이로 오해가 생겨 번번이 싸운다. 한 번은 아침에 남편이 사용한 젖은 수건 때문에 싸움이 났다. 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었으므로 아내는 젖은 수건을 아무 데나 놓지 말라고 아침에 한마디 했다. 남편은 평소 아내가 집안 정리를 잘못해서 불만이 있었지만 말을 않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출근 시간에 지적당하자 기분이 나빠진 것이다. 그는 속에 있는 말을 뱉었다. “나는 당신에게 할 말이 없는 줄 알아?” 사태는 커지고 말았다. 자녀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싸운 것이다. 어느 부부나 각각 자신들의 호불호가 있다 보니 상대에 대한 불만이 생긴다. 그 가운데 다투며 점점 지쳐가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관계 방식을 고쳐가며 성장하는 부부가 있다.

 

 배우자에 대한 오해가 서로를 괴롭힌다

A 부부의 경우, 아내 말에 의하면, 두 아기가 아침에 징징대며 울거나 자동차를 운전할 때 다른 차가 끼어들기라도 하면 남편은 소리를 빽 지른단다. 남편은 이해심이 부족하거나 남성적인 힘을 내세우려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알고 보니 소리를 지르지 말아 달라고 아내는 부탁한 적이 없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거니 이미 판단을 내린 상황이라서 그런 일이 벌어질 적마다 아내는 바로 우울해지곤 한다. 마음이 닫혀서 말하기도 싫어진다.

남편은 변명하길, 아침 잠결에 아기가 울면 본능적으로 짜증이 나고, 성격이 급해서 빽 소리를 지르기도 한단다.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도 받아주지 않아서 힘들다고 말한다. 아내는 남편이 고치지도 않을 사과를 한다고 생각한다.

 

 싸움만 잘해도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

B 부부의 경우, 아내는 굳이 출근하는 마당에 수건 이야기를 해야 했을까? 아내의 말투는 어땠을까? 관계에서 말투가 얼마나 중요한가? 아내는 소통 차원에서 한 말이라고 항변하지만, 남편이 듣기에 지적받는다고 느낄 소지가 있었다. 다행히 아내는 자신의 태도들에 문제가 있었음을 나중에 자각했다.

인간은 감정 외에도 이성과 영성의 동물이다. 부부관계에선 이성과 영성을 사용하기보다 감정적으로 반응할 때가 훨씬 많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상대로부터 대우받고 싶은 기대심리가 더 크기 때문이다. B 부부처럼 서로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자칫 지켜야 할 적정선을 넘어 적대적인 관계로 치닫게 한다. 싸움만 잘해도 부부는 서로를 제대로 알아가게 되고,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데 말이다.

 

 우린 배우자를 잘 안다고 착각한다

부부는 가장 가까운 배우자로부터 허물을 지적받게 되면 방어기제를 사용하게 된다. A 부부의 경우처럼 배우자를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해서 상대에 실망하면서 대화를 거절한다. 상담현장에서 ‘부부 대화’를 통해 얻게 되는 건 상대에 대해 서로 모르는 게 많아 편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부부가 전쟁하듯이 싸우고 나서 한참 냉각기를 거친 후 ‘우리가 지금 뭐 하는 거지?’ 하고 깨닫는 부부는 그나마 희망적이다. 눈물겹게 노력하는 부부들에게 힘찬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