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길(曉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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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曉行)
  • 曠坡 先生
  • 승인 2021.08.0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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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가 좋다

                         새벽길(曉行)

 

일작고숙촉서병(一鵲孤宿蜀黍柄)/까치 한 마리 수숫대에 홀로 잠들고

월명로백전수명(月明露白田水鳴)/밝은 달 흰 이슬, 밭엔 흐르는 물소리

수하소옥원여석(樹下小屋圓如石)/나무 아래 작은집은 돌처럼 둥근데

옥두포화명여성(屋頭匏花明如星)/지붕 위의 박꽃이 별빛처럼 환하네

 

 

*한여름의 새벽 풍경

조선 정조 때의 문인 박지원(朴趾源)의 시입니다.

박지원은 친족형 박명원(朴明源)이 사신으로 갈 때 동행하여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남겼습니다. 이 저서에는 그가 새벽에 요동 벌판을 걸어가면서 읊은 ‘요야효행(遼野曉行)’이란 시도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 소개하는 ‘효행(曉行)’ 역시 박지원이 요동의 새벽길을 가며 지은 시가 아닐까 추측이 됩니다. 수수밭이 펼쳐진 벌판과 나무 그늘에 숨은 듯 보이는 작은집, 그 지붕 위의 박꽃이 새벽어둠 속에서 볼 때 무척 인상적이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시인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한여름의 새벽 풍경을 시원하게 읊고 있습니다. 까치조차 잠들어 고요한 가운데 밭도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경쾌하고, 지붕 위의 박꽃이 하늘의 별빛과 눈을 맞춰 더욱 빛을 냅니다. 2연의 청각적 이미지와 4연의 시각적 이미지가 제대로 맞아떨어지면서 시에 더욱 생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