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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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함께 읽기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1.07.2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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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한 권의 책

 

 

지난 2016년 2월 신영복 선생님이 타계하셨다. 서재에서 읽지 않은 신영복의 책을 찾았다. <신영복 함께 읽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신영복 선생님 성공회대 정년 퇴임을 맞아 약 60여 명의 사람이 신영복에 관해 쓴 글이다. 책은 1,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신영복의 사상과 사색에 관한 글이고 2부는 신영복의 삶을 되돌아본 글들이다.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은 신영복을 닮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의 글이다. 각자 나무로 살다가 신영복을 만남으로써 더불어 숲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다.

각자 나무로 살다가 더불어 숲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

신영복의 글 어느 하나가 그렇지 않은 게 없듯 신영복이 아닌 주변 사람들이 쓴 이 책 또한 감동으로 넘친다. 신영복은 이렇게 그 이름 석 자 훈기만 맡아도 감동을 발한다. 그의 이름은 이제 우리 사회의 감동과 스승의 아이콘이 되었다. 모두 100세 시대라고 말하는 요즈음의 장수 시대에 그는 왜 그리도 빨리 우리 곁을 떠났는가.

신영복의 사상과 철학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관계론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의 존재론의 대구로 쓰이는 이 말은 ‘나 아닌 다른 것과의 관계성의 총체가’ 인간 생명의 본질을 이루고 있음을 말한다. 사람은 이웃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지 자기 개인만 존재하거나 변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이웃과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어떤 정서를 공유하는가 하는 사회적 입장에 따라 자신의 존재가 구성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신영복의 관계론에 관한 여러 가지 말 중에서 백미는 <나무야 나무야>에 나오는 쇠 이야기다.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모든 나무가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어느 생각 깊은 나무가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다.”

김형찬 교수는 말한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자기 안에 키우는 ‘지성의 나무’는 자기가 서 있는 곳의 토양, 바람과 햇빛 그리고 주변의 다른 나무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지성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와 맞닿아 있을 때 다시 말해서 그 사회의 기본적 모순의 한복판에 그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 가장 ‘정직한 나무’가 된다는 것이다.”

신영복은 ‘치열한 실천에서 멀어지고 관념화된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 ‘그렇게 느끼는 독자는 내 책을 안 읽어도 된다고 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는 그런 독자의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을 독자로 상정하고 있어요. 사회적 실천은 내포를 강화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외연을 확대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런 아쉬움을 갖는 독자들은 행간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주기를 바랍니다.” 세간의 그런 평가에 대해 강준만 교수는 말한다. “그는 오래전에 투쟁패러다임을 내버렸기에 자신의 메시지를 투쟁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독(誤讀)이 많아졌다. 신영복을 탓할 수는 없다. 그는 실천 없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영복의 사상과 철학의 요체는 관계론

20년 20일 동안의 감옥 생활을 거친 신영복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야, 너 하나도 안 변했구나’라며 말하더란다. 신영복은 세상과 그렇게 다시 만난다. 신영복이 감옥에서 쓴 옥중편지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출간하자마자 우리 사회를 강타한다. 그 책을 읽은 많은 사람이 반성과 회한과 고뇌와 감동의 숲에 빠져버린다. 어느 소설가는 그 글을 읽곤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표현을 썼다. 이 시대의 고전의 반열에 오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신영복을 한국의 루쉰이라고 부르게 하고 파스칼의 팡세, 몽테뉴의 수상록과 견줄 우리나라 최고의 수상록으로 칭송받는다.

신영복은 사상뿐 아니라 글씨로도 이 세상에 자국을 남겼다. 신영복체 또는 어깨동무체라고 불리는 그의 필체는 소주 이름을 넘어 사회 곳곳에 우리와 함께 이웃하고 있다. 특히 ‘서울’이라는 그의 글씨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북한산과 한강을 서울이라는 글씨 속에 풀어내는 현학은 가히 그림과 글씨가 어울려 한바탕 놀아대는 장관을 연출한다. 신영복이 아니고는 나타낼 수 없는 철학과 미학의 조화인 것이다.

신영복이 그동안 우리에게 보여준 것들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비롯하여 <강의>,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청구회 추억> 등 많다. 그중 <강의>는 정말 남다르다. 배병삼 교수는 <강의>에 대해 “도덕주의, 관념주의, 개인주의로 주저앉기 십상인 동양사상을 그리고 자칫 구라로 빠지기 쉬운 동양고전 강의를 옷깃 여미며 읽게 만드는 까닭은 그가 항상 희망을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2부에는 다양한 필자들이 등장한다. 신영복과 이런저런 사연으로 엮인 사람들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는 그래서 더 감동이다. 스승, 제자는 물론 초중고 동창, 후배, 육사 제자, 더불어 숲 회원, 교도소 교도원, 감옥 동료, 김정남 전 수석(그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축구를 잘했고 유머감각이 뛰어났던 엔터테이너 신영복

2부에서는 다양한 면모의 인간 신영복을 만날 수 있다. 그가 축구를 잘했다는 것과 유머 감각이 뛰어나 좌중을 늘 웃기는 엔터테이너였다는 것은 의외다. 게다가 노래 또한 잘하고 즐겨 불렀다고 한다. 그가 자주 부르던 노래는 안다성의 ‘에레나가 된 순이’라는 노래다. 6.25전란 속 농촌 소녀 순이가 양공주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담은 노래다. 시대를 아파하고 민중을 사랑한 그다운 선택의 노래다. 그의 결혼과 자식 그리고 친구 관계 등 실생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축구 선수 실력에 가수 실력에 개그맨 실력에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유치함의 실력이라고 한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그와 함께 유치하게 놀 때가 제일 즐겁다고 말한다. 감옥에서 출소한 후 그를 처음 만났던 사람들의 기억에 대해서도 말한다. 20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있었다는 그 생각만으로 그의 인상과 태도를 지레짐작했던 사람들 앞에 나타난 그의 해맑고 천진하기만 한 모습에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느꼈다고 말한다.

시대의 어른이 없는 세상에 그는 홀연히 나타나 우리의 스승이 되어 주었다. 이제 그가 떠난 세상, 모든 사람은 말한다. 한때 그와 같은 세상에 살았음을 감사하고 그의 생각에 공부하게 되었음을 감사한다. 고 노회찬은 ‘신영복과 함께 걷는다는 것,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것, 같은 곳을 디디고 서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축복이고 기쁨이다’라고 말한다.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그의 책 제목 <나무야 나무야>를 인용해 그를 추억해본다. “아 신영복, 신영복”

 

신영복 함께 읽기/강준만 등 여럿이 함께 씀/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