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夏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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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날(夏日)
  • 曠坡 先生
  • 승인 2021.07.0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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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가 좋다

                 여름날(夏日)

 

경삼소점와풍령(輕衫小簟臥風欞)/홑적삼에 대자리 깔고 바람 난간 누우니

몽단제앵삼량성(夢斷啼鶯三兩聲)/꾀꼬리 지저귀는 소리에 꿈조차 달아나네

밀엽예화춘후재(密葉翳花春後在)/우거진 잎 가린 꽃 봄 뒤에 여전히 남아

박운루일우중명(薄雲漏日雨中明)/엷은 구름 사이 해는 빗속에서도 빛나네

 

*봄과 여름의 길목

고려 무신정권 시대의 문사 이규보(李奎報)의 시입니다. 그는 운을 떼면 이른 시간 안에 바로 시를 짓는 급작시에 능하여, 당시 최고 권력자 최충헌의 아들 최우가 그를 매우 아꼈다고 합니다. 이 시의 원래 제목은 ‘하일즉사(夏日卽事)’입니다. 곧 ‘즉(卽)’ 자가 들어간 것을 보면, 시인의 천재성을 알게 해주는 ‘즉흥시’가 분명합니다.

성긴 모시 적삼을 입고 대자리에 누우니, 격자창으로는 바람이 솔솔 불어와 저절로 꿈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런데 여름 꾀꼬리 소리가 잠을 깨워 창밖을 보니,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수줍은 봄꽃이 살짝 미소를 짓고, 가는 비 내리는 하늘의 엷은 구름 사이로 해가 반짝 빛납니다.

시인은 누구나 초여름에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상을 읊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과 인간의 심성을 제대로 결합하면서 이 시는 기막힌 묘미를 살려내고 있습니다. 1연의 바람과 2연의 꾀꼬리 소리는 시인의 잠을 이끌고 깨우는 역할을 합니다. 3연의 꽃과 4연의 해는 시인으로 하여금 새삼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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