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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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1.07.0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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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한 권의 책

 

노암 촘스키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진보학자 중 한 명인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에세이. 1940년대 이후의 미국을 비롯한 세계정세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책 전면에 실려 있다. 가난한 유대계 미국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하워드 진은 훗날 대학교수로 괜찮은 삶을 살면서도 어렸을 적 자신이 겪은 사회적 계급의식을 한시도 잊지 않고 살아간다. 자유와 정의와 평등 그리고 행복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그는 사회의 무수한 편견과 관습과 모순들과 싸우면서 살아간다. 흑백의 갈등 속에서는 인종차별을 폐지하기 위한 싸움의 대열 속에 서고 대학 내의 비민주적인 관행과 제도에 대해서는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투쟁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하워드 진은 그런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자의 자세이며 그런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주류 언론에 의해 진실은 왜곡되고 여론은 조작되고 만행은 정의로 포장된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그의 고발은 이제는 모두 아는 철 지난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슴을 뜨겁게 한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베트남으로 떠나는 월남 장병들의 환송대열에 동원되었던 초등학생 시절을 생각하면 국가의 거짓말이 세상의 진실을 어떻게 호도하며 인간을 어떻게 세뇌하는가를 알게 된다. “자유 통일 위하여 조국을 지키려다~ 조국의 이름으로~” 지금도 가사가 생생한 맹호부대 노래를 무슨 정의를 지키는 수호신의 노래인 양 목청껏 불러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었던 전쟁이 남의 나라 독립전쟁에 끼어든 침략전쟁의 하수인이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충격으로 남아 있었다. 어디 세상의 거짓말이 그뿐이랴. 미국 영화에서 서부 인디언들이 기병대의 총에 맞아 쓰러질 때마다 박수를 극장 안이 떠나갈 듯 쳐댔던 어린 시절 또한 나중에 돌아온 건 배신감과 황당함의 충격이었다. 콜럼버스의 위대한 발견이라고 칭송받던 미 대륙의 발견도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침략전쟁이며 인종학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하워드 진은 미국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모든 전쟁은 만행이고 침략이며 학살이라고 증언한다. 다만 주류언론과 그 전쟁으로 이득을 취하게 되는 권력 있는 백인 남성들에 의해 진실은 왜곡되고 여론은 조작되고 만행은 정의로 포장된다고 말한다. 콜럼버스가 위대한 영웅이 아니듯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건국의 아버지들인 제퍼슨, 링컨, 윌슨, 루스벨트 또한 인종차별주의자거나 인디언 학살자, 전쟁광, 제국주의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역사가 얼마나 잘못된 포장으로 얼룩져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는 학생들로부터 히틀러와 콜럼버스 중 누가 더 나쁘냐는 질문을 받곤 악의 우열을 비교한다는 게 맞진 않는 말이지만 단연코 콜럼버스가 더 나쁘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철저한 반전론자인 그는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정치지도자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낸 것이며 그러기 위해 그들은 국민을 전쟁터로 내몰기 위해 엄청난 속임수와 선전 그리고 강압을 획책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중에는 지도자는 똑똑하며 똑똑하다는 말은 훌륭하다는 말로 착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자와 권력자들이 말하는 목소리 ‘우리는 훌륭한 체제를 갖고 있으니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에 하워드 진은 분노를 느낀다고 말한다.

정의와 평화를 위한 변화는 권력자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의존해야 한다

하워드 진은 학생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을 향상하는 것이 곧 정치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워드 진은 말한다. “정치 권력은 그것이 아무리 엄청나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허약하다. 혁명적 변화는 한차례 격변의 순간으로서가 아니라 끝없는 놀람의 연속, 더욱 좋은 사회를 향한 지그재그 꼴의 움직임으로 오는 것이다. 변화의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거대한 영웅적 행동에 착수할 필요는 없다. 작은 행동이라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반복한다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미래는 현재들의 무한한 연속이며 인간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나쁜 것들에 도전하며 현재를 산다면, 그것 자체로 훌륭한 승리가 될 수 있다. 정의와 평화를 위한 변화는 권력자들에게 의지하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 의존해야 한다.”

하워드 진은 애국이란 내가 사랑하는 조국의 국민이지 어쩌다 권력을 잡게 된 정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정의롭지 못한 국가의 제도에 맞서기 위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 운동을 강조한다. 미래도 없고 정의도 없는 직장생활을 무조건 참고 하는 젊은이들에게 그는 말한다. “여기가 싫고 그만두고 싶지만 벌써 5년이나 일했잖아. 25년만 채우면 연금 다 받고 퇴직할 수 있는데~ 그래서 그는 그대로 있기로 합니다. 휘리릭!! 그의 인생은 그렇게 가버립니다.”

역사적 관점을 바꿔야만 우리는 어둠을 밝힐 수 있다. 교육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그 책무에 무게를 느껴야 한다. 교육이란 이미 만들어진 낡은 질서에 학생들을 적당한 자리를 잡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의견을 달리하라고 항상 말하며 언제나 객관성의 위험에 대해 경고한다. 저자는 중립이라는 말은 보신용이거나 장막 뒤로 숨어버리는 기회주의의 비겁함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책 제목처럼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것이다. 하워드 진의 말을 들으니 어디선가 읽었던 주관과 객관에 대한 말이 생각난다.

“지금의 객관은 과거 누군가의 주관으로부터 시작됐고 지금의 주관 또한 어느 훗날 모두의 객관이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한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하워드 진/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