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포의 멋에 푹 빠진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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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포의 멋에 푹 빠진 여인
  • 김승규 기자
  • 승인 2021.06.14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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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연륜이 있는 국악의 길에서 도포를 짓고 있는 젊은 사장님을 찾아서

 

창덕궁 앞에서 종로3가역 방면으로 곧게 뻗은 길이 있다. 왕의 길이라 불리는 국악의 거리이다.

많은 이들에게 이곳은 화려한 한복집들과 국악기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한 거리였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되며 이 길에 드나들던 전통 예술가들은 발길을 돌리고, 많은 가게가 차츰 사라지고 옮겨지고 있다. 이러한 길 가운데쯤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에 있는 《한복 나뷔》를 찾았다.

웃음 가득한 모습으로 박선영 사장님이 반겨주셨다.

우리나라에서 한복 관련 유일한 배움터인 원광 디지털대학에 편입하여 한복학을 배우고 있는 박영선 사장님
우리나라에서 한복 관련 유일한 배움터인 원광 디지털대학에 편입하여 한복학을 배우고 있는 박선영 사장님

 

"서울하면 종로고, 종로하면 서울이에요. 어려서부터 시내에 나간다 하면 종로였어요. 청소년 시절에 종로 1번지 교보문고에서 각종 예술공연 티켓을 사는 사람들을 보며 굉장히 부럽고 그들의 문화 수준이 무척 높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종로 서적은 그에 비해 운동권 학생들이 무언가 접선을 하기 위해 만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지요. 엉뚱하지 않나요? 하하하"

박선영 사장님은 밝은 얼굴에 웃음을 띠며 종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20년 정도를 강남구청 근처에서 직장생활 했어요. 신이 놓친 직장(?)에서 왕고참으로 근무하며 연차도 많고 급여도 많았던 것을 과감하게 그만두었죠.

지금은 주 7일 출근해요, 하루도 쉼이 없지요. 일이 많다기보다 한복 공부도 하고, 여기 있는 나비(고양이) 밥도 줘야 하고 해서 나와요. 취미로 거문고 연주하는데 아마추어 합주단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국악의 거리에 전통을 이어가는 박선영 사장님,2018년 2월 이곳에 한복 나뷔를 열고서 한복을 짓는 일을 시작했다.
국악의 거리에서 전통을 이어가는 박 사장님, 2018년 2월 이곳에 한복 나뷔를 열고 한복을 짓는 일을 시작했다.

 

한복 나뷔에는 주인장을 집사로 부리는 회색빛이 아름다운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작년에 지인이 동네에 파양된 고양이가 있다고 해서 입양을 하게 되었다며, 그 뒤로 뜻하지 않게 고양이 집사가 되었다 한다.

종로 길고양이 카페에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길고양이 밥도 챙겨주고 있다. 참으로 웃음과 정이 많으신 사장님이다. 한복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여쭈었다.

"한복이 그냥 좋아서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한복 가게를 열려고 하지 않고, 한복이 좋아 배우기 시작했는데, 2017년이었어요. 한복을 제대로 배우자는 생각에 회사를 그해 2월에 퇴사하고 한복 공부 중일 때였죠. 지인 중에 광화문에서 한복축제 관련하여 식전 행사에서 노래하기로 한 친구가 한복이 없다는 거예요. 아직 그 친구는 학생이어서, 제가 퇴직금이 많이 남아있을 때라 한복을 지어준다고 했었죠. 워낙 서툰 솜씨였지만 만족하며 무대에서 제가 만든 한복을 입고 노래하는 친구를 보니 가슴이 벅찼어요. 그때 엉뚱한 다짐을 했어요. 5년 이내에 종로에서 사업자 소득세를 내겠다고.

아직 1년 남았어요. 그 다짐을 지키려면요."

 

 

어려운 상황이지만 꿈을 놓지 않으시고 계속 도전하는 박영선 사장님
어려운 상황이지만 꿈을 놓지 않으시고 계속 도전하는 박 사장님

 

"이곳 한복 가게들은 여자 한복을 주로 만들어요. 하지만, 저는 남자 포를 많이 해요. 남자 포는 크기도 크고, 짓기 어렵고 시장도 너무 작아 다른 가게에서는 꺼리는 것 같아요.도포나 답호 등을 격식에 갖춰 입고 있는 분을 보면 너무 멋있어요. 저는 한복관련 해서 다른 한복 가게에서 일해본 경험도 없고, 같이 정보를 공유해 주는 분도 없어서 학교에서 배운 것으로만 한복을 짓고 있어요. 요령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걸 모르니 곧이곧대로 한다고 봐야겠죠. 하하"

한복 원단을 살펴보고 있다.

 

박 사장님은 한복에 관련하여 잘못 알고 있는 것들도 이야기해주었다.

조선 시대 왕 즉위식 때의 복색을 드라마 등에서 보면 무척 화려해요.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해요. 왕 즉위는 선왕의 장례 때 이뤄지는 것이라 소복(素服)을 입었거든요. 그리고 요즘 도포 위에 답호를 걸쳐 화려하면서도 한층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는데, 답호는 원래 도포 아래에 입는 옷이었어요. 도포가 좀 더 커 보이는 효과를 누린다 할 수 있어요. 일종의 조끼죠. 지금 우리가 양복 재킷 위에 조끼를 입었다 생각하면 웃기긴 해요.”

오늘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한복 나뷔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려운 시기지만 버팀만이 살길이라며 우리의 것을 지키고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시는

박선영 사장님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