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가 좋다
다시 절에서 놀며(再遊是寺)
계류요석록배회(溪流遶石綠徘徊)/냇물이 바위를 휘돌아 푸르게 흐르는데
책장연계입동래(策杖沿溪入洞來)/지팡이 짚고 물길 따라 마을에 이르네
고사폐문승불견(古寺閉門僧不見)/옛 절문은 닫혔고 스님 보이지 않는데
낙화여설복지대(落花如雪覆池臺)/지는 꽃 눈처럼 연못과 정자를 뒤덮네
*꽃잎이 지는 풍경
고려 말의 충신으로 잘 알려진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시입니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시나브로 꽃잎이 지는 봄날의 풍경이 눈에 잡힐 듯 다가옵니다. 그만큼 묘사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동영상을 보는 듯합니다.
푸른 이끼가 낀 바위를 휘돌아 시냇물이 흐르고, 시인은 잠방이를 걷어 무릎 위까지 올린 채 맨발로 물속을 걷습니다. 그렇게 지팡이에 의지하여 계곡을 오르다 보니 사하촌이 나오고, 조금 더 가니 문 닫은 지 오래된 절이 보입니다. 스님도 없는 절 마당에서 문득 연못을 바라보니 정자와 수면 위로 분분히 꽃잎이 눈처럼 날려 떨어집니다.
여기서 더하고 뺄 것도 없이 그냥 그 정경 그대로 한 편의 멋진 시가 탄생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상념이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습니다. 이렇게 가감 없이 물 흐르듯, 봄날의 정경을 세련된 언어 감각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경지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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