門 과 길
상태바
  門 과 길
  • 오서아 기자
  • 승인 2021.05.22 1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를 추모하며


            門 과 길

                                        오서아

 

한 세계로 향한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문에 들어서면 길을 내어주셨습니다
나 있는 길이 아니라 한걸음 
또 한걸음 걸어가시며 
그대 손수 내이신 길

우리를 향해 문과 길이 열렸습니다
너와 나의 손으로 이어지는 비원은
별처럼 빛나고 달처럼 부풀어
내딛는 길마다 심어주신 나무들
거침없이 줄기를 뻗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측할 수 없었던 발들 뒤로

가지 올려 피고 지던 꽃차례
얼마나 시리도록 부시고
그토록 외로이 붉었는지를

깃발처럼 나부끼던 꽃대는
어느 순간 불칼로 벼리어져 
그대 겨누고 말았는지를

발들이 흩어졌습니다
길은 마냥 험하고 아득히 멀었습니다
작은 돌부리에도 지친 발 주저 않던 길 
켜켜이 싸늘한 언덕으로 뒤덮였습니다

천지를 울리던 고각의 함성
쩌렁쩌렁 귓전을 울리던 소리
바람 되어 아직 떠 도는데

닫는 목으로 부름이 삼켜듭니다
타는 가슴으로 침묵이 오열합니다

그대 마침내 떠나간 하늘
오월의 창해로 비가를 띄웁니다

시대의 문 다시 열릴까요
시대의 길 다시 걸을까요

이제 스스로에게 되묻는
물음이 되었습니다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길을 내어주셨습니다

문을 여는 것도 닫는 것도
길을 가는 것도 멈추는 것도 
의혹과 분열과 절망을 변주하던 
갈라선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문을 향하여 길을 바라봅니다
다시 일어설 두드림으로
다시 타오를 목마름으로
이 길 하염없이 걸음하기를

그대 앞서 내어 주시는 손
젖은 눈을 맞추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