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적 이성 비판-이성의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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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적 이성 비판-이성의 상실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1.05.0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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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한 권의 책

 

인간은 사실 목적보다는 수단을 추구하면서 산다. 수단을 좇는다는 것은 모든 가치를 도구로 사용한다는 말과 같다. 좋은 집과 큰 자동차와 높은 벼슬은 그게 삶의 목적이 아니고 수단임에도 사람들은 그걸 삶의 목적으로 생각한다. 이런 것을 ‘목적 전치’라고 한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사용하는 사이 점차 수단이 목적이 된다는 뜻이다.

호르크하이머의 <도구적 이성 비판>은 자연과 인간을 도구화하고 파멸로 이끄는 도구적 이성에 대한 비판과 고발이다. 이 책은 읽기가 어렵다. 곳곳에 난해한 표현과 어려운 문맥들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읽다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그러나 인내를 가지고 계속 읽다 보면 나중에 대강의 윤곽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난해한 책들을 읽는 방법은 모르는 부분은 그냥 지나치며 읽는 것이다. 한 문장의 의미에 매달리기보다는 비행기로 숲을 훑어 지나가듯 그냥 읽는 것이다. 뼈 많은 생선, 대강대강 살 발려 먹어도 고기 먹은 기분은 충분히 나는 법이다. 이 책은 이렇게 어렵지만 요즘 현대사회의 모든 가치가 극단적으로 도구화되는 현실임을 생각할 때 우리가 반드시 귀담아들어야 할 귀한 책이다.

(1) 이성

이성은 인간의 지능적 소양으로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이 책에 의하면 주관적 이성은 세상의 모든 가치를 그 본질적 의미를 통해 파악한다. 객관적 이성은 사회적 유용성을 통해 판단한다. 그러나 주관적 이성은 사회의 객관적 이성에 의해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성의 형식화 현상이다. 이성의 형식화는 정의, 평등, 행복, 관용 등 지난 세기 이성에 내재했거나 이성에 비준 받은 모든 개념의 정신적 뿌리를 제거한다. 한 마디로 이성의 기능이 속세에 물들면서 이성답지 않아졌다는 말인데 책의 내용을 쉽게 풀어 표현해도 이렇게 어렵다.

종교와 철학의 논쟁에서도 상호 중립화로 서로의 공존은 꾀할 수 있었지만, 서로의 본질에는 물타기가 돼버렸다. 결국 철학이나 이성이 가치를 상실하는 시대에서는 모든 것이 실용의 가치에서만 의존하게 되고 도구화, 사회화, 금전화, 이해관계에서만 작동하게 된다. 예를 들면 모든 취미활동과 기호식품 등도 결국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게 되고 생산성 향상, 건강증진, 사회성 등에 기여할 때만 의미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돈과 상품이 되는 목표물을 추구하는 업무만 생산적이라 불린다. 마키아벨리와 홉즈는 중세 귀족과 성직자들을 기생충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직접적인 생산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철학

개인은 집단에 매몰되고 개인의 의미는 그 속에서만 찾을 수 있게 된다. 거대한 현대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개별성의 몰락은 모든 인간에게 손상을 입혔다. 결국은 현대 산업주의의 경제적, 문화적 메커니즘이 인간다움으로의 발전을 점점 더 어렵게 한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개인들은 정복과 지배에 저항하며 고통과 굴욕의 지옥을 통과한 순교자들이지 대중문화의 관습에 따르는 성직자가 아니다. 철학의 과제는 비록 그 순교자들의 허망한 목소리가 전제정치에 의해 침묵을 강요당했을지라도 그들이 행한 것을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전환하는 것이다. 역시 어렵다.

(3) 결론

인간의 모든 활동이 오직 유용성이라는 기준에 따라 평가되면서 자연과 인간은 단순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지금 이 사회는 인간적인 사회로의 희망이 철저하게 왜곡되어 있다. 오직 돈과 권력만이 유일한 원칙이며 그것을 비판해야 할 이성조차 거기에 순응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해버렸다. 이 책은 50여 년 전에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문제와 그대로 일치하는 게 놀랍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비판이나 허무주의로 끝내지는 않는다.

“이론적 염세주의자이면서 실천적 낙관주의자가 되자.”는 말처럼 이성의 자기부정을 통해 왜곡된 현실을 끊임없이 계몽하고 진보시키는 게 지식인과 철학의 의무라고 말한다.

 

도구적 이성비판/막스 호르크하이머/문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