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우(春雨)
상태바
춘우(春雨)
  • 曠坡 先生
  • 승인 2021.05.03 1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시가 좋다

                춘우(春雨)

 

춘우암서지(春雨暗西池)/봄비는 아련하게 서쪽 연못에 내리고

경한습라막(輕寒襲羅幕)/스산한 바람 초막 속으로 스며들 때

수의소병풍(愁依小屛風)/시름에 겨워 작은 병풍에 몸 기대니

장두행화락(薔頭杏花落)/담장 머리로 살구꽃 이파리 떨어지네

 

 

*봄비에 꽃은 지고

한 폭의 동양화가 그려지는 시입니다. 한 여인이 허름한 초막 안에서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서쪽 연못으로 봄비가 내립니다.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불어오자 마음까지 추워 병풍에 등을 기대는데, 문득 바라보니 봄비에 살구꽃 이파리 몇 개가 담장 위로 떨어집니다. 시름에 겨워 몸을 움츠리는 그 여인은 다름 아닌 이 시의 저자 허난설헌(許蘭雪軒)입니다. 그녀는 허균의 누이로 조선조 선조 때 활약한 유명한 시인입니다.

봄비에 담장 머리로 떨어지는 살구꽃 이파리는 허난설헌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꽃잎처럼 지는 자신의 허허로운 인생을 시로 읊은 것입니다. 봄은 소생의 계절이지만 낙화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봄비는 생명을 촉진시켜주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꽃을 떨어뜨리는 이중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