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는 예쁜데, 첫째 아이는 왜 마음에 안 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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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는 예쁜데, 첫째 아이는 왜 마음에 안 드는 것일까?
  • 예현숙 박사
  • 승인 2021.03.15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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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상담전문가 예현숙 박사

 

언젠가 두 딸을 두신 어머니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 아이가 문제가 많다는 겁니다. 둘째 아이는 아주 야무져서 맘에 드는데 첫째 아이는 학교에 혼자 등교하지도 못하고 징징댄답니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엄마가 뒤쪽에 있나 없나를 확인하느라 몇 번씩 뒤를 돌아본다고 했습니다. 그런 첫째 딸이 엄마는 영 못마땅하였습니다. 뭐가 부족해서 쟤는 저러지? 뭔가 덜떨어진 건 아닐까? 엄마는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첫딸에게 짜증이 나곤 했습니다.

 징징대는 첫째 딸이 짜증나네요!

저는 엄마와 함께 첫째 딸을 만났습니다. 딸아이와는 이야기책과 그림 그리기로 속마음을 나누었으며, 엄마와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첫째 딸이 징징댄 이유는 동생으로 인해 빼앗긴 엄마의 사랑을 다시 찾으려는 욕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딸이 미웠던 이유는 딸의 징징대는 모습이 예전의 싫어한 자기였던 겁니다. 엄마는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다가 상담이 진행하는 도중에 알아차렸습니다. 엄마는 기억하기 싫은 기억을 무의식에 가둬두었던 것이고, 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하~ 깨달은 겁니다.

 

 

나의 심리적 그림자는 무얼까요?

프로이트와 함께 무의식이론의 대가인 칼 융은 ‘그림자’란 개념을 통해 우리 내면의 일부를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림자는 햇빛이 사물에 비취일 때 햇빛을 받지 못한 그 반대쪽에 생깁니다. 그 반대쪽은 어둡고 칙칙합니다. 우리 내면에도 어둡고 칙칙하다고 할 수 있는 열등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보통 생각하기 싫고, 피하고 싶은 요소들이라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억누른 내용들입니다. 그런 요소들을 심리적 ‘그림자’라고 일컫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내 안에 있는지 모를 때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곤 합니다. 알지 못하는 것은 다 투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투사하게 되면 다른 사람에 대한 혐오가 일어납니다. 마치 위의 소개된 어머니가 큰딸에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자동차 운전하다가 튀어나오는 욕설

분석심리학자인 이부영은 융의 수제자 폰 프란츠의 언어를 통해서 그림자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왠지 싫거나, 거슬리거나, 거북한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내가 나의 그림자를 투사한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봐야 할 일입니다. 또 대인관계에서 버럭 화부터 내는 사람들 역시 내 안의 아픈 곳이 건드려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그림자의 투사 현상이 일어나는 증거의 또 다른 예는 감정이 섞인 말투로 남을 비난할 때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향해 쉽게 저 사람은 이중인격자니, 속물 인간이니, 까탈스럽다느니, 게으르니, 혹은 사이코니, 사이코패스라는 등의 비난을 종종 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튀어나오는 욕설 역시 순간적으로 통제되지 않은 그림자입니다.

 

건전한 비판과 투사의 차이점은?

그렇다면 의문이 생깁니다. 타인의 위선적이고 좋지 않은 점이 있을 때 지적하는 것도 다 투사란 말인가요? 아닙니다. 건전한 비판과 투사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투사는 마음의 여유가 없으며 상대의 긍정적인 부분까지도 매도한다는 점에서 구분이 됩니다. 그렇다면 무의식 속에 갇힌 나의 그림자를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융은 약간의 자기비판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 내면의 그림자를 보기 싫어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는 것은 괴롭기 때문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나에 관해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확신을 하지만 그림자 이론에 의하면, 이는 매우 큰 착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그림자 인식이 자기 앎의 시작입니다

나만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 건 온통 자기 그림자를 타인에게 투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귀결이 되므로 유감스럽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저 유명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의 의미가 새삼 무게감 있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투사를 통해서 나의 그림자 인식은 가능합니다. 내 안의 그림자를 나를 성장시키는 존재로 만드느냐 아니면 더 짙은 “어두운 그림자 반려자”로 만드느냐는 전적으로 내가 노력하기에 달린 셈입니다. 앞의 어머니는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한 후, 아이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따듯한 마음 상태가 되었고,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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