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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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1.03.1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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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한 권의 책

 

오래 미루어 두었던 숙제를 했다고나 할까? 책장 한편에 오랫동안 꽂아 놓았던 이 책을 다 보고 나서 느낀 소감은 후련했다. 7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 차일피일 미루게 했던 원인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 책은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줄줄 쉽게 읽힌다. 번역이 아주 좋았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그런데 화려한 유명세와는 달리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소감은 사실 그리 상쾌하지 않았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들이라 그랬을까?

인류문명의 불평등에 관한 기원을 말하다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인류문명의 불평등에 관한 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대적으로 말하면 바로 1만~3만 년 전의 석기시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살아온 역정과 거기에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대륙 간의 발전과 퇴보, 정복과 몰락에 관한 환경 생태학적, 언어학적, 유전학적인 방대한 고찰이다.

인류는 왜 대륙 간 문명의 차이가 발생했을까? 아프리카, 유라시아, 남북아메리카, 호주 뉴기니의 인류들이 결국 문명의 차이로 서로 정복하고 지배되는 역사가 왜 발생했을까? 거기에 대한 답을 이 책은 줄곧 좇아가고 있다.

다른 대륙의 종족들을 지배하게 된 민족들은 다음과 같은 발전과정을 거쳤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류는 수렵유목민으로 시작하여 환경과 필요 그리고 발견에 의해 농작물과 가축을 사육하면서 정착 생활을 하는 농경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농경의 집단생활은 인구증가를 가져오고 가축은 인간에게 병원균을 일으키게 되고 결국 인류는 집단의 경쟁력이 생겨나며 새로운 철기문화를 이루게 된다.

위와 같은 흐름을 겪은 인류가 결국 그렇지 못한 인류들을 지배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유라시아 인류가 남북아메리카와 호주 뉴기니를 지배하게 된 것이 바로 그런 사례들이다. 이러한 흐름은 백인, 흑인, 몽골리안 등 종족의 우열에 따른 것이 아니고 순전히 그들이 처한 환경에 의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만일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유럽에서 거주하고 백인들이 아메리카에 거주했더라면 지금과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났을 거라고 말한다. 결국 인종의 생물학적 우열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지구라는 땅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러한 대륙 간의 문명의 차이는 환경, 즉 대륙이 처한 위치와 면적, 모양에 따르게 되는데 문명의 전파는 동서 간으로 수월하게 전파되며 남북 간으로는 전파가 안 되거나 아주 더디게 전달된다고 말한다. 동서 간으로 길게 뻗어있는 유라시아 대륙이 남북 간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아프리카나 아메리카보다 문명이 앞선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아메리카를 정복한 유럽인들은 이런 환경적 여건을 바탕으로 총을 갖게 되고 병원균에 대한 내성을 쌓았으며 쇠를 통한 철기문물을 갖춤으로써 그렇지 못한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 정복하게 된 것이다. 병원균에 의한 정복이라는 관점도 흥미롭다. 그들이 저지른 살육의 5%는 총기에 의한 것이고 나머지 95%는 천연두, 홍역, 페스트 등 병원균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결국 그들이 사는 이 지구라는 땅의 환경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모든 요소가 골고루 충족되어야 발전이 일어난다는 안나 카레리나의 법칙처럼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여러 가지 요건(위치, 면적, 기후, 모양, 풍토 등)이 충족될 때 비로소 문명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의 인류문명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은 지리적, 환경적 장애를 뛰어넘게 되어 이제는 더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식의 문명 차이를 존속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거대한 흐름 앞에 인간의 삶은 언제나 불투명하다.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문학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