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창문을 활짝 열어주는 레고 놀이
상태바
뇌의 창문을 활짝 열어주는 레고 놀이
  • 임현주 작가
  • 승인 2019.11.17 1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놀이가 곧 너의 언어다

오감을 자극하는 놀이는 어떻게 아이들의 지능발달에 영향을 미치며 뇌의 창문을 활짝 열어주는 역할을 할까?

15년 전 플레이웰 레고 센터를 오픈했을 때 생후 26개월 된 여자아이가 첫 회원으로 등록했다. 집에서 놀다가 엄마가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과도를 만지다 손가락을 다쳤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통원치료보다 레고를 가지고 놀게 하는 것이 재활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셔서요….”

처음엔 아이 어머니가 전한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레고가 재활치료에 활용될 수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손가락 근육이 절단된 상태였다. 다친 부위의 상처는 어느 정도 아물었으나 아직은 손의 움직임이 몹시 불편해 보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센터에 와서 레고를 가지고 놀았는데, 어느 날부턴가 손가락 동작이 매우 자연스러워진 걸 알 수 있었다. 레고 브릭을 이리저리 끼워 맞추느라 주물럭거리면서 반복된 작업을 되풀이하는 동안 소근육 운동신경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 아이는 유치원에 다닐 때도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레고 센터를 제2의 학교처럼 다녔다. 자라면서 아이에게 레고는 단순한 장난감 이상이었다. 열심히 놀이에 집중하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지적 호기심에 눈을 뜨게 된 아이는 줄곧 레고를 손에서 놓지 않다가 중고등학교 때부턴 레고 로봇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레고 대회 중에 ‘로보컵’이라는 대회가 있다. 축구로 치면 월드컵에 해당하는, 세계적인 로봇대회, 로봇들의 월드컵이다.

 

선수들은 팀을 짜서 레고로 만든 로봇으로 경기를 펼친다. 생후 26개월 때 엄마 손에 이끌려 레고를 시작한 그 아이의 꿈은 기계공학전문가라고 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호주 로보컵주니어 대회와 싱가포르 로보컵 대회에서 세계무대 경험을 쌓았고, 내년이면 고3이 되는 빡빡한 학사일정에도 올여름, 2019년 베이징 로봇 챌린지에 참가하여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레고와 함께 성장한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를 학습 도구로 활용해서 꿈을 이룬 사례는 많다. 네 살 무렵 동생을 보고 난 후에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해서 어린이집 대신 레고센터를 다니던 남자아이는 올해 과학영재고등학교에 합격했다.

대학입시 못지않게 지원자격부터 매우 까다롭고 엄격한 심사기준을 적용하는 과학영재고 입학에 가장 중요한 면접과 에세이에서 당락을 결정짓는 건 학습능력과 자기 표현능력이다. 준비된 과학영재로서 입학 전까지 쌓아온 지식과 재능으로 미래 가치를 창출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또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이 자신의 성장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녔는지 진솔하고 논리정연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보고 합격과 불합격을 가른다.

그 아이는 레고만으로도 할 이야기가 넘치게 많았다. 팀원들과 협업하면서 깨우친 소통의 중요성, 세계대회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과 교류를 통해서 새로운 배움을 얻고, 자신을 성찰한 이야기, 동아리 친구들과 로봇 재능기부 봉사 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이 면접과 에세이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고 한다. 스펙을 위한 스펙이 아닌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정성 있는 레고스토리가 그 아이를 반짝반짝 빛나게 했으리라.

영유아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레고는 레고사람 혹은 동물 피겨이다. 이 시기에는 레고 인형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이야기로 꾸며서 노는 걸 좋아한다. 레고는 이때 아이들의 상상력을 펼치는 도화지 같은 역할을 한다. 미래의 스토리텔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실감 나게 표현하려 레고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적당한 위치를 잡아 세우거나 펼쳐가며 모양을 잡아가는 동안 사물의 형태와 이미지, 색깔, 크기, 질량, 무게감 등을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된다. 이야기를 꾸미다 보면 레고 조각이 더 필요할 때도 있고 몇 개를 빼야 할 때도 있다. 그러면서 간단한 더하기와 빼기, 어림하기와 측정하기 같은 수학과 과학적 개념도 더불어서 익히게 된다.

아이들은 자기가 원하는 모양이 눈앞에서 구현될 때까지 몇 번이고 쌓고 무너뜨리고 다시 쌓기를 반복한다. 이런 무수한 반복놀이가 아이들의 두뇌발달에 매우 중요하다. 아이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조금이라도 더 그럴듯하게, 조금이라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하나하나 노력하면서 행복을 느낄 때, 그때가 바로 뇌의 창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이다.

놀이교육 현장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놀이가 곧 너의 언어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놀이 하나로 다양한 국적을 가진 친구들과 교류하며 심오한 기술과 지식, 폭넓은 세계문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문화충돌을 경험하게 된다. 글로벌 세상에서 ‘나 홀로 천재’는 설 자리가 많지 않다. 어려서부터 오감을 자극하며 뇌의 창문을 활짝 열어주는 브레인스포츠 레고로 ‘같이 잘 노는’ 그 아이가 바로 미래가 원하는 인재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