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밤 홀로 앉아(雪夜獨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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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밤 홀로 앉아(雪夜獨坐)
  • 曠坡 先生
  • 승인 2021.01.0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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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가 좋다

   눈 오는 밤 홀로 앉아(雪夜獨坐)

 

파옥량풍입(破屋凉風入)/다 부서진 집에 차가운 바람 들이치고

공정백설퇴(空庭白雪堆)/비어 있는 뜰에 흰 눈이 내려 쌓이네

수심여등화(愁心與燈火)/쓸쓸한 이 내 마음은 저 등불과 같아

차야공성회(此夜共成灰)/이 한 밤에 더불어서 재가 되어버리네

 

*겨울밤의 고독

조선 현종 때의 문신인 김수항(金壽恒)의 시입니다. 그는 노년에 진도로 유배되어 갔다가 현지에서 사사되었는데, 아마도 ‘설야독좌(雪夜獨坐)’는 그 쓸쓸한 여운이 유배 당시의 고독한 생활을 연상케 합니다.

오언절구의 이 시는 마치 점강법(漸降法)처럼 낡고 부서진 집, 눈이 내리는 빈 뜰, 등불을 밝힌 방안 등을 차례로 비추면서, 마침내는 시인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보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1구와 2구는 눈 오는 자연의 풍경을 읊고 있고, 3구와 4구는 쓸쓸한 시인의 마음을 자연에 비유해 응답하고 있습니다. 방안의 심지가 타들어 가는 등불처럼 홀로 깨어 앉아 있는 시인의 마음 또한 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을씨년스러운 겨울밤의 고독이 시 전편에 깔려 흐르고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긴 겨울밤 고독한 시간을 즐겨보는 것도 매우 운치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