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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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0.12.2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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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한 권의 책

 

나는 한시를 좋아하며 제법 많은 한시를 알고 있는 편이다. 한시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되는데,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의 한시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로 시작하는 이 한시는 그 당시 가렴주구에 대한 멋진 비유와 탐관오리들에 대한 통쾌한 응징이 마음에 들어 오랫동안 애송하는 한시가 되었다. 그 후 남이장군의 <회군>을 비롯하여 주자의 <권학시>, 남아의 기개를 읊은 월성 스님의 <제벽시> 등 이런저런 한시를 접하게 되었다. 이백, 소동파, 김시습 등의 한시 한두 편 정도는 항상 외울 수 있었는데 그중 해학과 비유로 질펀한 김삿갓의 한시에 대해서는 책을 여러 권 보기도 하였다.

그런 나로서는 <한시미학산책>이라는 책은 제목부터가 사실 흥미를 끌었다. 그런데 이 책은 손에 잡는데도 그렇고 읽는데도 여러 날이 걸렸다. 보통 책 한 권은 3~4일이면 읽게 되는데, 이 책은 거의 2~3주가 걸린 것 같다. 재미가 있고 내용이 좋아도 역시 양이 많은 책은 좀 벅차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책은 좋다. 동서고금의 많은 한시를 섭렵하고 있는 이 책은 한마디로 저자의 풍성한 ‘한시 오디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당시와 송시는 물론 우리나라의 각종 한시를 넘나들고 있다. 저자의 독서량과 한시 사랑에 놀라게 된다. 한시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방대하고 섬세한 해설이 오히려 부담되지 않을까 싶다.

한시에서 표현되는 여러 방면의 세계, 즉 그림, 은유, 오독의 재미, 한 글자가 갖는 반전의 의미, 시가 오히려 인생을 망친다는 시마와 시로 인해 살림이 망가진다는 궁핍 이야기, 시가 씨가 되어 재앙이 온다는 시참론, 그림과 도형의 모습으로 시를 쓰는 잡체시, 문자 유희와 여러 해체시 종류, 시속에 들어있는 역사 이야기 등등 우리가 몰랐던 분야까지 약 24가지의 측면에서 분류해놓은 한시의 내용이 무궁무진하다. 책을 읽다가 내가 아는 한시를 만날 땐 무척 반갑다. 이 책에 실려 있는 내가 아는 한시 두 편과 이 책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평소 좋아해 자주 읊조리는 한시 한 편을 소개한다.

1) 정지상의 <송인>

대동강가에서 님을 보내며 이별의 감정을 노래한 <송인>. 너무도 유명한 정지상의 <송인>은 당대 중국의 내로라 하는 문인들도 모두 최고라고 인정한 명품 한시다.

정지상의 송인과 함께 이별과 그리움을 노래한 절창 중에는 이옥봉의 <증운강>도 빼놓을 수 없다. 정지상이 이별의 슬픔 때문에 눈물로 대동강이 마를 날 없다고 했다면 이옥봉은 그리움의 한 때문에 앞마당을 서성이다가 댓돌이 모래가 되었다고 말한다.

 

         <送 人/송 인>    -鄭知常-

雨歇長堤 草色多 (우헐장제 초색다) 비개인 긴 둑에 풀빛이 완연한데

送君南浦 動悲歌 (송군남포 동비가) 남포에서 님 보내니 슬픈 노래가 이누나

大同江水 何時盡 (대동강수 하시진) 대동강 물이 언제 마르랴

別淚年年 添綠波 (별루년년 첨록파)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질 테니

 

2) 다음은 김삿갓 특유의 질펀한 욕설 한마당의 한시.

방랑길 어느 서당에 들렀는데 학생들은 떠들기만 하고 훈장이란 사람은 꼴도 안 보이고~ 보다 못한 김삿갓이 시 한 수를 남기고 떠나간다. 한시 뜻으로는 그럴듯한 훈계조 비난이지만 한글 독음으로는 지독한 욕이다.

                 <어느 서당에서>        -김삿갓-

書堂乃早知 (서당내조지) 서당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는데

房中皆尊物 (방중개존물) 방안엔 모두 잘난 놈 뿐이구나

學生諸未十 (학생제미십) 학생은 모두 열 명도 안되면서

先生來不謁 (선생내불알) 선생은 와서 인사도 안 하는구나

 

3) 이 책에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학창시절부터 애송하던 김시습의 시.

‘때로 비 오고 때로 개이다’는 세상의 인심과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한 한시.

 

      <乍晴乍雨/사청사우>             -金時習-

사청사우 우환청(乍晴乍雨 雨還晴)-개었더니 비 오고 오던 비 다시 개네

천도유연 황세정(天道猶然 況世情)-천도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세정이야

예아변응 족훼아(譽我便應 足毁我)-날 좋다 하던 사람 문득 나를 욕하고

도명각자 위구명(逃名却自 爲求名)-공명마다 하던 사람 공명 찾아 헤맨다

화개화사 춘하관(花開花謝 春何管)-꽃이야 피고 지건 봄이 무슨 상관이며

운거운래 산불쟁(雲去雲來 山不爭)-구름이 오고 가도 산봉은 탓 않는다

기어세상 수기억(寄語世上 須記憶)-세상 사람들아~이 내 말 들어보소

취환하처 득평생(取歡何處 得平生)-평생의 즐거움을 어디 가서 얻으리

한시미학산책/정민/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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