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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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0.11.1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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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한 권의 책

 

정의로운 사회! 가슴의 피가 뜨겁던 청춘의 시절엔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본 세상의 이름이다. 이 책은 1930년대 스페인 내전에서부터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아나키스트를 꿈꾸며 격동의 세월을 온몸으로 살았던 주인공의 뜨거운 삶의 고백이다. 인간의 어느 삶이 안 그러랴마는 지구 서쪽 끝의 피부색을 달리하는 스페인에서도 사람들의 삶과 생각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데서 오히려 신선한 감동을 한다.

영원한 아나키스트 '납탄 동맹'

가난한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은 시골에서의 단조로운 삶과 그것을 최고의 삶이라 여기는 아버지와 계속 충돌하던 끝에 결국 도시로 나온다. 그러나 휘황찬란한 도시는 주인공에게 한자리를 내줄 만큼 녹록지 않았고 평온하던 세상은 오히려 전운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살벌한 스페인 내전 속에서 주인공은 사회당과 공화파, 아나키스트들로 구성된 인민전선에 뛰어든다. 그곳에서 4명의 뜻 맞는 동지들과 함께 영원한 아나키스트로 살아갈 것을 약속하며 정표로 탄환으로 만든 4개의 납탄 반지를 만들어 나누어 낀다. 그리고 그 이름을 납탄 동맹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외친다. “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다.”

하지만 스페인은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보수우파의 승리로 다시 왕정 아닌 독재로 들어간다. 주인공은 스페인을 탈출하여 프랑스로 간 뒤 거기서 다시 2차 세계대전을 맞는다. 세계대전이 프랑스의 승리로 끝나고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프랑코 치하의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뒤로 한 채 현실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미 많은 아나키스트가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프랑코 체제로 들어간 것을 주인공은 아프게 지켜보며 주위의 권유로 현실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대의에 충실한 삶이 가능할까

전후 궁핍과 혼란의 사회 속에서 인간의 변절과 도덕적 타락 그리고 욕망의 파도 속에서 주인공은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을 꺼내 보곤 하지만 이미 재편된 사회에서 한 개인의 신념은 더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치품에 불과하다. 거대한 흐름 속에서 결국 주인공은 사회적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정과 사회 그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게 된다. 세월은 흘러 주인공은 양로원을 선택하게 되며, 그곳에서 그가 그렇게도 꿈꾸던 자유의 세상으로 날아간다. 양로원 4층의 창가에서 신발을 벗어놓은 채로~

대의에 충실한 삶이 과연 가능한지, 그리고 그게 과연 바른 삶인지 우리의 주인공은 끝없이 고민하고 방황하다 비극의 최후를 맞는다. 이 책은 김성동의 <현대사 아리랑>을 생각나게 한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운동가들의 삶이 해방 후 그들의 가치와 달리 극명하게 갈라지는 현실은 동서를 막론하고 우리를 슬프게 한다. 대의를 위한 삶이 정작 자기 자신의 삶을 파괴한다면 그런 세상과 그런 삶에 우리는 동의할 수 있을까?

조국의 땅에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어느 아나키스트의 철학과 욕망, 현실과 좌절이 시대와 함께 녹아있는 이 책은 만화라는 장르가 오히려 더 진지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감동 또한 더 묵직하다.

어느 아니키스트의 고백/안토니오 알타리바/길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