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슬픔 /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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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 / 시집
  • 권용철 작가
  • 승인 2020.11.06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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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한 권의 책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유명한 책이다. 격랑의 민주화 시대를 거친 우리로서는 ‘산 자여 따르라’라든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 같은 문장들은 당대의 아픔과 참회를 대표하는 말로 인식됐다. 그런 말 하나로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책은 그 제목이 말하듯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다. 나는 왜 이 책을 이제야 읽게 됐나 하는 의문과 자성을 해본다. 사회성 뜨거운, 그래서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시집이다.

이 책은 따로 논평이 필요 없다. 바로 시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3편의 시를 읽어보자.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저자는 왜 살아남은 자신이 미워졌을까? 역사적으로 볼 때 험난한 세월 속에서 살아남은 자는 대부분 비겁자이거나 기회주의자, 잔챙이 아니면 무식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적인 판사>

미합중국의 시민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심사하는

로스앤젤레스의 판사 앞에

이탈리아의 식당 주인이 왔다.

진지하게 준비해왔지만

시험에서 보칙 제8조의 의미를 묻는 질문을 받고 머뭇거리다가

1492년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신청은 각하되었다.

3개월 뒤에 더 공부해서 다시 왔으나

이번에는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누구였는가 하는 질문을 줬는데

그의 대답은 1492년이었다.

다시 각하되어 세 번째로 다시 왔을 때

대통령은 몇 년마다 뽑느냐는 세 번째 질문에 대하여

그는 또 1492년이라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판사도 그가 마음에 들었고 그가 새 언어를 배울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조회해 본 결과

노동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네 번째로 나타났을 때 판사는 그에게

언제 아메리카가 발견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리하여 1492년이라는 그의 정확한 대답을 근거로 하여

그는 마침내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위 시는 내가 요약 정리한 것이다. 어느 책에선가 처음 이 시를 보곤 크게 감동하였던 기억이 난다. 나를 감동하게 했던 그 판사, 그 시! 그렇지! 모름지기 판사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하면서 흥분한 적이 있다.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가끔 감동에 관한 주제가 오를 때 내가 꼭 인용하여 좌중을 또 한 번 감동하게 하는 시이다.

 

<분서>

위험한 지식이 담긴 책들을 공개적으로

불태워버리라고 이 정권이 명령하여

곳곳에서 황소들이 끙끙대며 책이 실린 수레를

화형장으로 끌고 왔을 때,

가장 뛰어난 작가의 한사람으로서 추방된

어떤 시인이 분서 목록을 들여다보다가

자기의 책들이 누락된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는 화가 나서 나는 듯이 책상으로 달려가

집권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 그는 신속한 필치로 써 내려갔다.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

그렇게 해다오! 나의 책을 남겨놓지 말아다오!

나의 책들 속에서 언제나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제 와서 너희들이 나를 거짓말쟁이처럼 취급한단 말이냐!

나는 너희들에게 명령한다.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

그 외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등 우리에게 알려진 시들이 많다. 가슴이 뜨거운 시는 역시 아픈 사회를 말하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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