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서울시 등록문화재 됐다
상태바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서울시 등록문화재 됐다
  • 변자형 기자
  • 승인 2020.09.10 13: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미래유산 중 보존·활용 가치 있는 3건 선정

종로구 관철동의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과 경운동의 ‘구 통계국 청사’(서울노인복지센터)가 서울시 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서울시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유산 중에서 건설·제작·형성된 후 50년이 지나고, 서울의 역사·문화·생활·경제·종교 등 각 분야에서 보존하고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등록된 문화재이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매년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미래세대에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서울 근현대 유산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하고 있다.

시는 2019년 12월25일부터 시행된 시·도등록문화재 제도에 따라 서울미래유산 중에서 시·자치구 및 산하기관이 소유하고 있는 50년이 경과한 문화유산을 1차 대상으로 조사하여 이번에 최종 3건을 등록문화재로 등록했다.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사진=서울시 제공)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사진=서울시 제공)

 

1970년대 건설된 서울지하설 제1호선 계획의 시발점이 된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이 서울시 등록문화재 제2호로 등록됐다.
1960년대 수도권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 계획된 수도권 전철 1호선은 그 기준이 될 수준점을 설정하는 것으로 지하철 건설 계획을 세웠다. 지하철 수준점은 지하철 선로의 깊이와 터널의 높이, 역사(驛舍)의 상하축 높이의 척도가 되는 기준이었다.

보신각(관철동 소재) 울타리 안에 설치된 직경 7㎝, 길이 12㎝의 놋쇠 못이 한가운데에 박힌 사방 25㎝의 화강암 수준점에는 ‘수도권 고속전철 수준점. 1970.10.30.’이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1970년 10월30일 양택식 시장이 종로에 수준점을 설치한 후 첫 측량에 나섰고, 이를 기준으로 서울시내 지하철 공사를 위한 측량작업이 이루어졌다.
도로확장에 따라 보신각이 현 위치로 이전되면서 수준점도 함께 이전되어 수준기점의 역할은 상실했다. 하지만 여전히 당시의 모습대로 보신각 구역 내에 위치하고 있어, 서울지하철 1호선 사업의 시발점이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구 통계국 청사 (사진=서울시 제공)
구 통계국 청사 (사진=서울시 제공)

 

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한 ‘구 경제기획원 통계국 청사’는 서울시 등록문화재 제3호로 등록됐다. 청사 자리는 1908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가 설립된 곳이었다. 해방 후인 1949년부터는 공무원 교육기관인 ‘국립공무원훈련원 청사’가 있었다. 1961년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경제기획원조사통계국’ 건물이 준공됐다. 2001년부터는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서울시로부터 위탁을 받아 ‘서울노인복지센터’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 대표 1세대 건축가로 불리는 ‘이희태’ 건축물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 입면에 있어서의 면분할을 이 건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각형의 입면비례체계를 가로변에 따라 증축시켜 나가면서 건물의 입면을 구성하고 있다. 가로변에서 보이는 건물은 높이와 폭의 비례가 1:3이 되도록 하였고, 세부적으로 다시 수직과 수평을 3등분하여 하나의 입면 단위가 사각형을 구성하고 있다.
건물의 내부 공간 구성은 여러 차례 변형이 되었지만, 해방 이후 한국 현대건축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초기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건축문화재적 가치와 보존적 가치가 높아 서울시 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한편, 서울시 등록문화재 제1호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한강대교’가 선정됐다. 한강대교(漢江大橋)는 1917년 10월에 준공된 한강에서 가장 오래된 인도교이다.
최초로 가설된 인도교는 노들섬과 노량진간의 ‘대교’와 노들섬과 한강로간의 ‘소교’로 나뉘어져 있었다. 강폭이 좁은 용산에서 노들섬 구간은 일반다리 형태로, 강폭이 넓고 수심이 깊은 노들섬에서 노량진까지의 구간은 선박통행이 가능하도록 교각 간격을 넓힌 트러스 형태로 지어졌다.

용산측 ‘소교’는 1925년 7월 을축년 대홍수로 유실되어 1930년 8월에 확장 재건되었다. 이후 1936년 ‘전차궤도 부설 계획’에 따라 폭이 협소한 노량진 쪽 트러스교 상류 측에 아치교를 건설하기 시작하여 1937년 10월 완공했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 중에 부분적으로 폭파 붕괴되어 사용불능 상태가 되었다가 1958년 다시 복구되었다.

조선시대 정조가 화성에 행차할 때 배다리를 놓았던 곳에 설치된 한강대교는 수해와 전란으로 인해 1917년 당시의 모습은 사라지고 변형된 모습이지만 서울의 남북을 잇는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80년대 산업화의 흔적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상징적인 교량으로 대한민국 근현대 역사의 산 증거이자 우리나라 교량기술 발전의 복합적인 상징물로 평가되어 보존·활용 가치가 충분하다.

서울시는 이번 제1~3호 등록을 시작으로 공공자산에 대한 부동산·동산 등록문화재 발굴작업을 지속하면서 시·도등록문화재에 대한 세제 혜택이 마련되면 개인이나 법인 소유의 등록문화재도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갈 예정이다.

서울시 권순기 역사문화재과장은 “앞으로도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서울의 문화유산을 등록문화재로 등록해 체계적으로 보존·활용하면서 ‘2천년 역사도시 서울’의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