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시 한편
사랑
정희성
사랑아 나는 눈이 멀었다
멀어서
비로소 그대가 보인다
그러나 사랑아
나도 죄를 짓고 싶다
바람 몰래 꽃잎 만나고 오듯
참 맑은 시냇물에 봄비 설레듯
<사랑의 아포리즘>
-눈먼 사랑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치고 눈멀지 않는 사람 없다. 눈이 멀어야만 ‘비로소 그대가 보이는’ 사랑. 그 사랑은 아무도 모르게 ‘꽃잎 만나고 오는’ 그런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그 비밀을 그대와 나 단둘이서만 간직하고 있기에 ‘봄비 설레듯’ 가만히 한 자리에 마음을 정해두지 못한다.
-사랑은 상대의 마음을 훔치는 범죄행위다. 아니, 사랑은 상대가 자기 마음을 훔치도록 눈감아주는 자유 방임이다. 눈먼 사랑은 모든 걸 다 알면서 동시에 모든 걸 다 모르는 이율 배반의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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